이 한 편의 詩

정자나무 밑/ 고은

뚜르(Tours) 2014. 7. 10. 06:17

 

 

정자나무 밑

                                             고은

오랜 마을에는
꼭 정자나무 한 그루 계십니다
오랜 마을에서는
꼭 깊은 우물 시린 물 길어 올립니다
그 물 길어 올리는 시악시 계십니다

점심먹고 한동안 모이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 막 되어가도
언제나 넉넉한 정자나무 밑으로
할아범도 아범도 나오십니다
큰 나무 하나가 스무 사람 품으십니다
땀 들이고 더위 잊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 자욱합니다
몇 마디 말 허허하고 나누십니다
 
가만히 보니 과연 정자나무 밑에서도
좌상 자리있고 다음 자리 있어서
저절로 늙은이 섬기고 손윗사람 모십시다
그 무슨 개뼈다귀 예의지국이 아니라
이는 정녕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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