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말씀의 초대
히즈키야 임금은 자신이 병사할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슬퍼하며 자비
를 간구한다. 주님께서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의 수명을 더해 주시며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 있는 도성을 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예수
님꽈 함께 밀밭을 지나가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 예수님께 항의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는 다윗과 그 일행이 성전에서 제사 빵의 규정을 어기고 먹은 사례를 드시며 그들을
논박하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
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
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
이오." 하고 말하였다.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
오?" 하고 물었다.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
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이사 38,1-
6,21-22.7-8)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
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
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때, 다윗
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
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
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
의 주인이다."(마태 12,1-8)
오늘의 묵상
세상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리 낯설게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현대인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제법 익숙합니다. 기나긴 역
사적 과정을 통하여 축적된 신학, 미술, 건축, 문학, 영화, 철학 등 인류의 문화유산
에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와 해석들이 가득 담겨 있고, 대중 매체는 사람들이 이를
손쉽게 대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활동을 수시로 듣고 보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리스
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달으려는 노력에 오히려 더 소홀하지는 않을까요?
그분에 대해 익숙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더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문자로 쓰인 법이 올바른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
곧 당신께 행위의 참됨이 달려 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 규
정 자체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서 보여 주시는 행적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절대적' 신뢰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규정도, 거룩
한 성전조차도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고, 살아계시는 주님 앞에서 상대적이어
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유한한 진리가 진리 자체이신 분을 가려
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진리 밖에 있다 하더라도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
할 것'이라는, 러시아 문호 도스토엡스키의 유명한 말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이처럼 절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
는 힘은 그분께서 진리 자체이시라는 근본적 신뢰에서 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
겠습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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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7. 18.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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