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5년 전만 해도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아빠는 건강했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엄마는 다정했습니다.
저보다 6살 많은 누나는 매 학년 반장을 할 만큼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엄마는 항상 바빴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아빠는 나와 누나를 데리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자주 여행도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조리사답게 집에서 쉬는 날이시면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아빠는 자세히 말씀은 안 해주셨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는 자꾸 빚을 지셨고,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엄마와 이혼만은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고 자책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면서
자책하고, 또 자책하셨습니다.
저는 아빠에게 괜찮다고,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엄마와 헤어진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겨서라는 걸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그 모든 게 아빠 잘못이 아니라는 걸...
어린 저도 아니까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깨어진 가정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아빠를 봐서라도
저는 씩씩해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이혼하고 3개월은
잠도 못 주무실 정도로 힘들어하셨습니다.
다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 믿고
문도 잠그지 않았던 아빠는 엄마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할 만큼 사랑하셨거든요.
행복한 가정을 깨어버린 엄마가 밉고 또 미웠습니다.
그런 저보다 누나의 속상함은 더욱 심했나 봅니다.
누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와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와 정이 들면, 그 사람도 엄마처럼
곁을 떠날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누나는 그렇게 외톨이처럼 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도 가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집에 핏자국이 가득했습니다.
누나는 너무도 슬프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의 몸에 자해했던 것입니다.
누나는 그렇게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누나 때문에 아빠는 더욱더 힘이 들어 보이셨습니다.
모든 게 다 본인 때문이라는 자책감으로
더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저라도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잘 먹고 억지로 웃는 표정으로
아빠를 대했습니다.
아빠는 다행히 저희 때문이신지 정말 더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마치 슈퍼맨 같아 보였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릴 데리고 나들이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주셨습니다.
다행히 누나는 우울증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조금씩 호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찾은 듯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는 저희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끝도 없는 시련이 또다시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지난해 6월, 속이 좀 좋지 않다는 아빠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아빠가 '암'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수술만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암세포가 급격히 번져서
갑자기 수술도 받을 수 없는 4기 암이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데...
정말 거짓말 같았습니다.
계속되는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던 아빠가,
슈퍼맨 아빠가... 무너졌습니다.
방 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아빠를 보고
누나는 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이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습니다.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한 아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잘못 한 번 안 하고 착하게 살아온 아빠에게
왜 이런 병을 주셨는지...
**************************************
최근 아버님은 6차 항암치료까지 잘 마쳤습니다.
딸 지우(가명)와 아들 지훈(가명)이를 위해서라도
절대 쓰러질 수 없다는 아버님은 자주 산에 오릅니다.
체온을 높이면 암세포가 사라진다는 말에
운동도 틈틈이 하고, 찜질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서도 혹여나 자신이 잘못됐을 때
남겨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하십니다.
"아직 너무 어리잖아요. 엄마도 없는데...
나까지 아이들 곁에 없으면 우리 아이들 어떡해요.
그러니 반드시 제가 건강해져야 해요.
여기서 절대로 쓰러질 수 없어요.
저는... 아빠니까요."
<따뜻한 하루>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모 콤플렉스 (0) | 2020.02.10 |
---|---|
한 손으로도 박수를 치다 (0) | 2020.02.09 |
사고 싶은 거 다 사도 돼! (0) | 2020.02.07 |
친구로 남는다는 건 (0) | 2020.02.06 |
사랑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0) | 2020.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