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 박인걸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도
선선할 바람에 맥을 못 추고
짙푸르게 무성하던 숲도
어쩔 수 없이 빛이 바래는구나
절정으로 치닫던 참매미노래도
이제는 종적(蹤迹)을 감춘
구슬픈 귀뚜라미 소리만
가을이 문턱에 있음을 알린다.
한 시절이 가고 오는
일정한 순환의 법칙 아래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젊은 날의 아쉬움이여
풀잎을 흠뻑 적시는 아침이슬은
젊음을 잃는 슬픔의 눈물일까
되돌릴 수 없는 운명 뒤안길에서
잎새를 흔드는 바람처럼
못내 아쉬운 섭섭함이여
꽃잎은 점점 시들고
나뭇잎 한 잎 두 잎 질 때면
여문 알맹이들만이 빛나겠지만
푸르름이 사라질 들판에서
초점 잃은 사슴의 눈망울처럼
멍하게 허공만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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