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백로 / 박인걸

뚜르(Tours) 2023. 9. 8. 13:11

 

 

백로 / 박인걸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도

선선할 바람에 맥을 못 추고

짙푸르게 무성하던 숲도

어쩔 수 없이 빛이 바래는구나

절정으로 치닫던 참매미노래도

이제는 종적(蹤迹)을 감춘

구슬픈 귀뚜라미 소리만

가을이 문턱에 있음을 알린다.

한 시절이 가고 오는

일정한 순환의 법칙 아래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젊은 날의 아쉬움이여

풀잎을 흠뻑 적시는 아침이슬은

젊음을 잃는 슬픔의 눈물일까

되돌릴 수 없는 운명 뒤안길에서

잎새를 흔드는 바람처럼

못내 아쉬운 섭섭함이여

꽃잎은 점점 시들고

나뭇잎 한 잎 두 잎 질 때면

여문 알맹이들만이 빛나겠지만

푸르름이 사라질 들판에서

초점 잃은 사슴의 눈망울처럼

멍하게 허공만 바라다본다.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바람 타는 계절 /정기모  (0) 2023.09.10
내 정체성에 대해 고백함 / 김남극  (0) 2023.09.09
바다 /조병화  (0) 2023.09.07
9월 수채화 /정심 김덕성  (0) 2023.09.06
너를 훔친다 - 손현숙  (0)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