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뚜르(Tours) 2024. 1. 27. 12:06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인은 깃발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지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복잡한 거리가 행인을 비우듯

그대는 내 가슴의 한복판을

스치고 지나간 무례한 길손이었을뿐

기억의 통로에 버려진 이름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맥주를 마시고 잔디밭을 더럽히며

빨리 혹은 좀 더 늦게 떠나갈 뿐이지요

이 세상의 영원한 애인이란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출처 : 박정대 시집, 『단편들』,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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