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쑥 / 김왕노

뚜르(Tours) 2024. 5. 3. 16:37

 

 

  / 김왕노

 

아무리 두더지가 땅을 뒤지며 가고

무거운 군홧발이 지나가고 궤도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여기저기 박격포 탄이 터져 봐라

쑥은 쑥의 말로 겨우내 도란거리다가 쑥쑥 돋아나는 거다.

지독하다고 면박을 주든 말든 캐든 말든 쑥은 쑥쑥 쏙은 쏙쏙

쑥의 정신을 볻받으면 두려운 것이 어디 있으랴

밭두렁 논두렁이 다 까뒤집어지고 게 발인지 개 발인지 개발인지

계발인지 지랄염병 떨어도 이 땅에 봄이 오면

봄의 파수꾼으로 여기도 쑥쑥 저기도 쑥쑥 오늘도 쑥쑥

쑥 캐던 처녀가 바람나는 것도 그 쑥쑥 그 쏙쏙 그 기운 때문

어둠을 밀쳐 대며 겨울을 밀쳐 대며 발끈한 그 쑥 때문이 아닌가.

어둠을 대차게 파고드는 그 쏙 때문이 아닌가.

바다에는 쏙이 쏙쏙 들판에는 쑥이 쑥쑥 이 진풍경, 이 삶의 장엄

그 누가 어쩌겠느냐. 누가 이 쑥쑥과 이 쏙쏙과 대적하겠느냐.

여기서도 죽창처럼 쑥쑥 돋아나는 쑥을

저기서도 죽창처럼 쏙쏙 파고드는 쏙을

그들의 사주를 받고 자꾸 형형해지는 저 눈빛은 또 어찌 하겠냐.

- 김왕노,『그리운 파란만장』(천년의시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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