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밭 / 김명인
웃자라 활짝 핀 고사리를 며칠째 베어 낼 때
부드러움에 감칠맛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척추를 세우기도 전에 이 노동은 질겨진다
이슬로도 축이며 풀은 쇠는 것이어서
고사리 밭 가운데서 푸드덕 꿩이 난다
유월의 고사리는 맹금의 부리를 지녔다
잡목을 몰아낸 승자의 터전으로
비탈을 덮어쓰고도 독초처럼 진심을 감춘다
사내들이 뱀이 많다는 고사리 밭을 가로질러 간다
바닥째 들썩이는 피복의 힘,
이 산등은 오래전부터 단장의 피 울음에 절었다
- 김명인,『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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