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모르는 당신 /이화영​

뚜르(Tours) 2024. 10. 27. 17:45

 

 

모르는 당신  /이화영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을 만나서 기쁘지만 언제 당신을 잊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얼굴은
내가 아는 그녀와 많이 닮아서 자꾸 웃게 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났느냐고
어디 사냐고
묻지만
그 순간에도 난 당신을 잊어 갑니다

어느 날은 전혀 모르는
당신이 따뜻했습니다
당신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잊고 잊습니다
잊는 일은 우리를 만나고 웃게 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합니다
나는 꽃잔디 같은 미소를 짓고
당신은 자꾸 내 손을 만지작거립니다

당신이 떠날 때
당신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지만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배웅합니다

모르고 잊고 살다
어느 하루는
당신이 생각나 가만 잠이 듭니다


- 시집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천년의 시작 2024)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이 떠나는 날 /高松 황영칠  (0) 2024.10.31
우체국을 지나며 / 문무학  (0) 2024.10.28
가을이 돌아오다 /박동수  (0) 2024.10.24
코스모스 / 오탁번  (0) 2024.10.18
매일꽃 연정 /문태성  (0) 20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