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오탁번
20년 전
가을 어느 외로운 날
양평에서 열리는 시낭송회에
신달자 시인과 함께 가는 길이었다
국도 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가을 하늘 아래
막무가내로 흔들리는데
읍내 다 못 가
손에 잡힐 듯 우뚝하니 서 있는
석조로 지은 웨딩홀이
꼭 중세 유럽의 성 같았다
나는 궁리 끝에 속삭였다
- 웨딩홀이 참말 멋지다
우리 결혼식 올리고 갈까?
신달자 시인이 호호호 웃었다
-그럴까?
시 낭송 무대에 오른 신달자 시인이
박꽃처럼 예쁜 얼굴로
(아, 입이 가볍기도 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저 오탁번 시인이
멋진 웨딩홀을 보더니
글쎄, 결혼식 하자고 조르는 거예요
이 말을 듣자 사람들이
코스모스 빛 가을 하늘 아래
막무가내로 웃었다
- 오탁번,『시집보내다』(문학수첩,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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