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 윤제림,『새의 얼굴』(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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