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구룡포 있다 - 김윤배
갯바람보다 먼저 구룡포의 너울이 밀려왔다
너울 위에 춤추던 열엿새 달빛이 방 안 가득 고인다
밤은 검은 바다를 벗어놓고
내항을 건너고 있었다
적산가옥 낡은 골목을 지나
밤은 꿈을 건지는 그물을 들고 있다
너는 구룡포였으니 와락 껴안아도 좋을 밤이었다
내항을 내려다보는 비탈에 매월여인숙은 위태롭다
해풍이 얼마나 거칠었으면 구룡포
올망졸망 작은 거처들을 열매로 매달고
어판장 왁자한 웃음들 꽃으로 피웠을까
켜지지 않은 집어등 초라한 배경 위에
구룡포 잠시 머물다 떠난
사람들 아름다워 목이 메었던 것이다
너는 구룡포였으니 와락 껴안아도 좋을 웃음이었다
- 김윤배,『바람의 등을 보았다』(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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