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경칩(驚蟄) /임보

뚜르(Tours) 2025. 3. 5. 07:25

 

 

경칩(驚蟄)   /임보

 

 

2064년 2월 23일

일본 기상청의 지진 관측소가

이색적인 보도를 했다

일본열도의 모든 곳에

땅 속의 개미란 개미는 다 지상으로 나와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고 했다

 

2064년 2월 25일

가축들은 우리를 박차고 튀쳐나오고

뭍의 짐승들은 다 산 위로 몰려갔다

수십만 마리의 들쥐떼들은

서쪽 바다를 향해 뛰어들기도 했다

 

2064년 2월 28일

나뭇가지 위에 둥우리를 튼 날짐승들도

철새처럼 떼를 지어

북쪽 하늘로 날아갔다

 

2064년 3월 2일

일본의 모든 공항이란 공항은

떠나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2064년 3월 3일 새벽

마른 하늘에 천둥이 울고

출렁이는 배처럼 땅이 흔들렸다

떠오르던 샛별이 다시 주저앉고

후지산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바다는 갈라져 불을 뿜고

수백 미터 솟구친 해일이

모든 섬들을 삼켰다

 

2064년 3월 4일

조선반도의 땅들도 금이 가고

높은 산들이 무너져 강을 메웠다

정오쯤

동해 바다의 거친 해일을 뚫고

거대한 짐승이 등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붉은 산호초로 덮인 검은 짐승은

서서히 바닷물을 삼키면서

울릉도를 머리 위로 밀어 올리며

태백산맥에 거대한 다리를 걸쳤다

 

2064년 3월 5일

경칩일(驚蟄日)

세계의 지도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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