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영성이 추구하는 것은 현세에서부터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과
대화, 즉 하느님과의 우정의 나눔입니다.
이것이 묵상기도이며, 우리는 묵상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고, 친밀한 일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친밀한 일치를
끊임없이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일치(一致)또는 합일(合一, Union)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체적, 자연적 합일이고, 다른 하나는 상사적(相似的)또는
초자연적 합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영혼 안에든, 세상에서 제일 나쁜 대죄인의
영혼 안에라도 실체적으로 계시고, 그 힘이 되어 주십니다.
하느님과 피조물과의 이런 합일은 항상 있는 것으로, 이로써 피조물은
제 존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합일이란,
항상 되어있는 실체적인 합일이 아니고 영혼이 하느님과 결합되어
하느님으로 변화하는 것으로서, 항상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비슷(相似)할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초자연적 합일은 두 의지(意志), 말하자면 인간과 하느님의 의지가
하나로 합쳐 상반됨이 없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하느님 의지와 상반되고 맞지 않는 것을
온전히 끊어 버리면,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변화합니다.
사랑 안에서 보다 많이 나아간 영혼, 즉 그 뜻이 하느님 뜻과 보다
많이 합쳐진 영혼과는 하느님께서 보다 많이 통교(通交)하시고,
그 뜻이 온전히 같아진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의 합일이 초자연적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햇살이 유리창에 비친다고 할 때, 유리에 때가 끼어 있고
흐려져 있으면 티없이 맑고 깨끗한 유리처럼 태양 빛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히 비쳐질 수 없습니다.
때와 흐림을 덜 벗으면 덜 벗을수록 그 만큼 덜 비쳐지고,
맑으면 맑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비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살 탓이 아니라 유리 탓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리가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하면, 유리 전체가 햇빛처럼
되고 밝아져서, 햇빛과 같이 보이고, 햇빛과 같은 빛을 낼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유리와 같아서 하느님의 빛이 항상 그 안에 비추고 있고, 영혼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영혼이 이와 같이 하느님 아닌 모든 것을 말끔히 벗어버림으로써
하느님과 온전히 뜻을 같이하고 변화합니다.
이 합일의 준비는 영혼이 하느님께 대한 인식, 맛, 감정, 상상,
그 밖의 어느 것을 가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결과 사랑 뿐,
즉 주님 하나를 위하여 일체를 온전히 버리고 버리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맑음 없이는 완전한 변화가 없고, 맑음의 비율대로
영혼의 빛남 및 하느님과의 합일이 더하고 덜하게 됩니다.
일체를 오롯이 떠나 티없이 맑고 개끗하지 않으면,
영혼은 하느님과 오롯이 결합하지 못합니다. (갈멜의 산길 2,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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