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의 저자 丁若銓 유배지
茶山,우이산서 먼바다 보며 눈물
‘나주 바다와 강진 사이에는 이백리 거리/험준한 두 우이(牛耳)산을 하늘이 만드셨던가/아득히 먼 곳을 실컷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른다네/꿈 속에서 서로 보고 안개 속을 바라보니/눈은 물커지고 눈물 말라 천지가 깜깜하구나’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온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4)은 1804년 강진의 뒷산인 보은산(우이산)에 올랐다. 둘째 형 약전(若銓·1758~1816)도 흑산도 앞 우이도(牛耳島)에서 역시 유배 중이었다. 다산이 형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시를 읊조렸다. 형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결국 형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약전은 흑산도 사리마을에서 먼저 유배생활을 했다.
약전은 유배생활중 표해록(漂海錄)도 저술했다.
우이도 사람 문순득(文淳得·1777~1847)에 관한 기록이다. 어상(魚商) 문순득이 1801년 홍어를 사러 갔던 흑산도에서 떠밀려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을 거쳐 1805년 돌아왔었다. 문순득의 표해 전말을 약전이 직접 듣고 기록한 것이었다.
또 다산의 강진 제자 중에 이강회(李綱會·1789~?)가 있었다.
그는 다산이 유배에서 풀리어 떠나자 정약전이 유배 중 숨진 우이도에 들어가 두 형제의 학문적 성과를 계승하는데 힘쓴 인물이었다. 그가 우이도에 기숙할 당시 집주인이 문순득이었다. 다산과 제자, 약전, 그리고 우이도 사람이 중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뜻한 정과 의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정황을 입증해주는 문서가 발견돼 공개되었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서 열고 있는 다산유물특별전에 가면 이 자료를 볼 수 있다. 우이도에 사는 문생(文生)이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다산이 둘째 형의 상을 당하여 애통한 심정을 말하고 형의 상(喪)때 도와준 우이도 사람의 후의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다산과 형, 제자는 물론 우이도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간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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