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성부께 드린 마지막 기도는 우리를 세상 한가운데로
보내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 17,18).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에세네파 사람들처럼 세상을 멀리 등지며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외적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삶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신앙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곧 어부인 제자들에게 어부 생활을 통해 아버지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폭풍이 불어 닥친 바다 한가운데서도 아버지를 신뢰하라고 하시면서 일상생활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에서 만난 병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고쳐주시며 제자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다면 종교는 억압받는 인간의 해방자가 아닐 뿐더러
하느님의 모습까지도 변형시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경험을 공유하라고
제자들을 초대하시며 인간 삶에 몰입하십니다.
그러나 당신 아버지와 항상 일치하여 계십니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억측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꼐서는 순간순간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동이 이를 증명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일상 생활 안에서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게 행동하십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제자들은 그들을 향해 친근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는 주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제자들과
가까이 계시고
섬기는 이로 처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를 잡는 동안 손수 숯불을
지피시고 방금 잡은 고기를 가지고 오라고 하시어 식사 준비를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나눔의 자세 안에서 주님을 알아봅니다. 의심을 가지고 주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던 제자들까지도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 21,12).
우리 시대를 살다 간 신앙인 마드렌느 델브렐(Madeleine Delbrel)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비그리스도인들과 만나고 그들의 일상생활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계산된 삶과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의 팔에 안겨 영원한
사랑의 노래에 맞추어 즐기는 춤의 축제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창조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많은
사람의 마음 안에 감동을 일으키는 당신의 부름에 대한 끊임없는 "예" 가 되게 하라고
촉구하십니다.복음은 우리의 뿌리를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요한 17,15).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에 사는 것과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은 상반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둘은 서로
일치하고 보완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삶을 온 마음으로 생활하신 첫 번째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고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며우리 주위에 매일 더 큰 희망을 심어야 합니다.
재속회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희망을 안고 세상 한가운데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6세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재속회 회원들의 봉헌 생활은 세상의 열망과 복음의 호소가 만나는
'실험실'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례받은 이들이 세상 한가운데에 전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과 친교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시대의 흐름, 사회를 혼돈과
혼란으로 몰고 가는 인간의 사리사욕,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문화의
폭발과 같은 제도적 위험들 속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말을 앞세우기보다 가난한 이들의 처우 개선과 억압과 압제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며 그들의 투쟁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러움에 처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돕는 일에 기꺼이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국가의 경우와 같이 빈곤한 이들을 집단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성전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상인들을 회초리를 들면서 몰아내신
예수님의 모범에서 교훈을 얻도록 합시다.
기도의 집인 주님의 성전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명철한 눈으로 금전의 지배가 신앙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부패와
비리를 봅시다. 그 또한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 급증하는 실업자들과 자기
기득권을 지키고 자기 직업과 입장만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흔히 소홀이 지나치는 지구촌의 상황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 상황들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국 우리 각자와 직결된 문제들입니다.
또한 권력을 움켜쥔 이들에게 치중하는 매체는 우리에게 정보의 퇴보를
가져다 줍니다.
오늘의 대중매체는 선정적 정보들을 마구 쏟아냄으로써 하루하루 인간 삶의
토양에 물을 공급하는 선의와 창의력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악한 환경과 지구 차원에서 도움이 되는 모든 선의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힘과 도움이
되는 일에 모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되고 세상에 새로운 형태의 생존 방식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자크 드라포르트 신부 지음 / 이창영·바오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