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알아, 난 잘 안다고 -
아우구스트스 황제 시대의 로마 제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황제는 인구 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모든 주민들에게 자기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요셉이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을 향해
여행길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마리아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임산부였다. 요셉은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마리아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바짝 마른 당나귀 한 마리를 구한 것뿐이었다.
그 당나귀는 자기 평생에 그렇게 다정하고 마음씨가 따뜻한 주인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당나귀에게 먹을 것고 마실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쓰다듬어 주고 몸을 씻겨 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 말 못하는 짐승은 자기 주인들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평화와 기쁨이 흘러 넘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한 마리의 하찮은 당나귀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데가 있어.
무언가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것 같아….'
지친 몸으로 베들레헴에 도착한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밤 묵어 가기 위해
길가의 여인숙을 찾아갔다. 그때는 밤이 이슥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여인숙에는
빈 방이 하나도 없었다. 요셉은 현관문을 두드리며 빈 방이 없으면 복도나
어디 좋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하룻밤만 묵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여인숙 주인에게 사정했다. 하지만 인정 사정 없는 주인은 요셉과 마리아의 행색을
뜯어보더니,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당신네가 무신 귀빈이라도 되는 줄 아시오?
이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서는 웬 소란이오?
당신네 같은 사람을 재워 줄 방은 없으니 당장 나가시오!"
당나귀는 요셉과 마리아가 그런 호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입다물지 못해, 이 멍청한 짐승 같으니! 잠든 손님들을 다 깨워 놓을 참이야.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뜨거운 맛을 보여 주지!"
여인숙 주인은 벼락같이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있는 힘을 다해 그 가련한 짐승의 배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요셉과 마리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도 이렇게 걷어채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여기서 나가란 말이오!"
마리아와 요셉은 하는 수 없이 쓸쓸히 그 여인숙을 나왔다.
당나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날 밤, 그들은 마을 변두리의 초라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에 겨우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마구간에서는 벌써 소와 개, 말 몇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요셉 일행이 나타나자, 하나같이 신경질을 냈다.
특히 그들은 자꾸만 당나귀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저 볼품 없는 인간들이 데리고 온 짐승 좀 봐! 하하하! 정말 똑똑하게 생겼군.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고 우아할 수가 있을까! 하하하! 자네들, 지금까지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어 본 적있나? 저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달콤한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금방 잠이 올 거야."
자정이 되자, 마리아는 드디어 예쁜 아기를 낳았다.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로 싸서는
구유 옆에 눕혀 놓았다. 산모와 아기를 보살펴 주고 함께 있어 줄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요셉과 당나귀밖에 없었다.
잠시 후, 조용한 발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마구간 옆에 나타났다.
이내 초라하고 무식한 목동들이 마구간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아기를 바라보며 축하의 인사를 했다.
"호산나! 드디어 우리의 구세주가 오셨네! 오, 주님! 당신을 경배합니다. 호산나! 호산나!"
당나귀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목동들이 하는 말을 들은 당나귀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 그들과 함께 갓 태어난 아기를 경배했다.
마구간 안에 있던 다른 짐승들은 이런 갑작스런 소동에 영문을 모르고 신경질을 냈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목동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멍청한 목동들 좀 보게! 얼간이 같으니라고! 호산나? 도대체 누구를 경배한다는 거야?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거지의 자식을 경배한다고?
구세주는 뭐고 메시아는 또 뭐야? 지나가던 개도 웃겠다, 하하하!
어떻게 저 조그만 갓난아기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거지?
저렇게 약하고 무기력한 아기가 말야 저 아기는 다른 보통 아기들과 똑같잖아.
이건 정말이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군."
목동들이 마구간을 떠나고 나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당나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호산나! 어서오세요, 주님! 나의 구세주여!
나는 주님이 목동들이 환영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호산나!"
마구간의 모든 짐승들은 그 당나귀를 향해 미친듯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너는 왜, 저 나약한 아기를 메시아니 구세주니 하면서 떠받드는 거냐?"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어디 그럼, 그 아기가 구세주라는 것을 증명해 봐."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그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내 온몸으로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네가 그렇게 머리가 나쁜 짐승이라면 어떻게 저 아기가 구세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이야?"
"난 알아, 난 잘 안다고! 그건 사실이야, 나는 머리가 나빠, 하지만 나는 감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바로
가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이제 그만 지껄여라. 우리는 너같이 똑똑한 짐승하곤
수준이 맞지 않아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
"그래, 난 머리를 통해 알 수 있는 지식보다도 훨씬 더 깊고 풍부한 마음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 내 마음은 너희들 머리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진실들을
느끼고 있지. 나는 알아, 난 잘 안다고! 증명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저
'진실'임을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참된 지식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들어 있어. 진실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안돼, 난 알아, 난 잘 안다고!"
마구간의 다른 짐승들은 욕만 퍼부을 뿐 더 이상 그 당나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 아기 예수님은 어른 예수님이 되어
위대한 예언자요, 기적을 행하는 구세주로 널리 사람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지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은 성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섰다.
온 세상 사람들이 구세주이자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보다 먼저 마을로 들어가서 나무 밑둥치에 묶여 있는 당나귀를 찾아보아라.
당나귀가 있으면 고삐를 풀어서 이곳으로 데리고 오너라. 난 그 당나귀가 필요하다.
내가 구세주이자 메시아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당나귀를 타고
자랑스럽게 도시로 들어가고 싶다."
잠시 후, 예수님은 정말로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섰다.
예수님의 앞길에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당나귀의 발 밑에 깔아 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호산나! 호산나! 하느님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축복을 내리시리라!"
마을에 있던 다른 짐승들은 한결같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 초라하고 볼품 없는
당나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왜, 우리의 구세주가 하고 많은 짐승 중에서 하필이며 저 보잘것없는 당나귀를 타고
오시는 걸까? 우리가 저 당나귀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우리가 짐이나 나르는 저 한심하고 멍청한 짐승 당나귀보다도 더 비천하고
초라한 짐승이란 말인가?"
하지만 당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마치 다른 짐승들이 뭐라고 비웃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한
당당한 태도였다. 당나귀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온 세상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알아, 난 잘 안다고! 나는 안단 말이야!"
피터 라이브스
진실의 본질은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