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현충원
비 오는 날, 현충원을 걸었습니다.
함초롬히 빗물을 머금은 이름 모를 꽃나무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생각에 잠겨 걸었습니다.
빗물에 씻긴 나뭇잎의 싱그러운 향기를 맡으며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현충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하얀 꽃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실비를 머금고 부는 미풍이 마냥 싱그러운 오후였습니다.
비가 내린 현충원은 고요함과 한가로움이 나를 행복하게 한 오후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지장사(地藏寺)가 있습니다.
지장사에는 깊은 암반에서 끌어 올리는 약수가 있답니다.
조그만 호숫가에 빈 의자만 비를 맞고 있습니다.
밀어(密語)를 나누던 연인(戀人)은 어디로 갔을까?
이곳에서도 하얀 꽃나무를 만났습니다.
이 나무를 보면서 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하얀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보석 구슬처럼 빗물이 영롱하게 자귀나무 잎에 매달려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또르륵 소리를 내며 구를 것 같았습니다.
무덤 가에 핀 넝쿨장미는 빗물을 머금고 힘겨운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라를 위한 정열로 아낌 없이 바친 영령들의 붉디 붉은 정열을 생각해 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의 죽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들과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입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내 속에서 두 분의 영혼을 위한 묵주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곳은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노라. 그리운 가족과 그대를 위해 나는 싸웠노라."
2008. 5. 28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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