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남을 설복하기 어려움에 대하여

뚜르(Tours) 2009. 1. 29. 10:24

한비(韓非)는 한비자(韓非子)라고도 불리는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저서에 <세난편(世難篇)>을 두어 남을 설복하는 기술에 대해 논하였는데, 다음은 그 일부이다.

옛날 송나라에 부자가 있었다.
비가 와서 그의 집 담이 무너지자 그의 아들이 말하였다.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이웃집 노인도 같은 요지의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갔는데 이에 대해 부자는,
 “혹시 이웃집 영감쟁이가 훔쳐간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였고, 자기 아들에 대해서는,
 “너는 앞을 내다볼 줄 안다.”
하고 칭찬하였다.

정나라 무공(武公)은 호(胡)를 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도
겉으로는 친애하는 체하며 자기 딸을 호에 시집 보냈다.
그런 다음 신하들에게,
 “내가 전쟁을 칠 만한 나라가 어디이겠는가?”
하고 물었다.
관기사(關基思)는 무공의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호를 쳐야 합니다.”
하고 아뢰였다.
그러자 무공은,
 “호는 형제의 나라이다. 어찌 호를 치란 말이냐?”
하고 관기사를 죽였다.
호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안심하여 방비를 하지 않았다.
무공은 그 틈을 보아 호를 침략하여 나라를 빼앗았다.

한비자는 이 두 사례를 든 다음 말하였다.
 “이 두 경우를 보면 이웃집 늙은이와 관기사는 그 지혜로써는 적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도리어 화를 입었는데,
이는 ‘지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처리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또 말하였다.

옛날 미자하(彌子瑕)라는, 위나라 임금에게 총애를 받는 신하가 있었다.
위의 법도에 따르면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탄 자에게는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주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들자 미자하는 임금의 명이라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궁을 빠져나가 어머니를 만났다.
임금은 그것을 알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미자하는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하여 발꿈치 베이는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느 날 미자하는 임금과 복숭아 밭에 있었다.
미자하가 복숭아 하나를 먹어보니 맛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임금은 이때에도 감탄하여 말하였다.
 “미지하는 나를 지극히 아끼는구나! 제 입에 넣는 것조차 잊다니!”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미자하가 작은 죄를 범하자 임금은 그를 이렇게 책망하였다.
 “일찍이 너는 나의 명령이라 속이고 수레를 타고 궁에서 나갔다.
또 먹다 만 것을 감히 나에게 권하여 욕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앞에서는 어질다는 칭찬을 받고 뒤에서는 죄를 입었는데,
이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미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논하고 있는 한비의 저작은 나중에 진시황이 된 진왕(秦王) 정(政)에게까지 알려졌다.
진왕의 청에 응하여 한비는 그를 만났다.
이때 진왕의 신임을 입고 있던 이사(李斯)와 요가(姚賈)는
한비가 등용되면 자기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한비를 모해하였다.
그리하여 한비는 진나라에서 죽었다.
스스로 <세난편>을 지어 남을 설복하는 기술에 대해 능란하게 논한 그였지만
그 또한 진왕을, 즉 남을 설복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김정빈 지음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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