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샘물

기쁨을 함께 만들기 / 안셀롬 그륀

뚜르(Tours) 2009. 5. 21. 10:22

      기쁨을 함께 만들기 몇 해 전에 우리 수도회의 회원인 첼레스틴(Coelestin) 형제가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참으로 모범적인 수도자였다. 그는 언제나 재미있는 유머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내가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날이면 그는 그의 삶이 다하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기까지 내 사무실로 와서 자신이 지은 시를 한 편 내놓고 트럼펫 을 연주하곤 했다. 트럼펫을 더이상 연주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서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자신이 개발한 춤을 내 앞에서 추어 보였다. 내가 감사를 드리면, 그는 언제나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 수도 공동체에 소속된 회원들의 수가 백 명 정도 되므로, 그는 해마다 그런 방식을 상당히 많은 횟수로 반복했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행위는 그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불러 일으키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한 원천이었다. 그리고 많은 수도자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자신들을 위해 무엇인가 수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했다. 하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가장 큰 기쁨을 누린 사람은 바로 첼레스틴 형제 자신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 형제가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도록 하고, 모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즐기는 것에 우리를 이용해 먹었다고 반기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이 타인보다 낫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남을 돕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심리학적 지식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상황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완벽주의와 청교도주의로 빠져들게 한다. 첼레스틴 형제가 다른 형제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먼저 큰 기쁨으로 그런 일을 준비한 것이 그렇게도 나쁜가? 그의 행동이 그에게도, 다른 형제들에게도 기쁨을 주었다면 그런 행동 안에는 모두를 위한 축복이 들어 있는 것이다. 첼레스틴 형제는 그토록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도 풍부한 유머 감각과 삶의 기쁨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고 수월한 시절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내게 와서 힘든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는 묵주기도를 간절히 바치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인내를 깊이 묵상하면 서 견뎌냈다고 이야기해 준 일이 있다. 그런 깊은 묵상은 그에게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자신과 병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생동감 넘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궁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런 일은 그 자신을 기쁘게 했고, 건강을 지켜 나가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우리 시대가 지닌 위험 중에 하나는 우리가 나르시즘에 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런 태도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필요로 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만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 생각 속에서 맴돌면 만족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욕구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 같은 것이다. 자신의 삶의 무가치와 무의미에 대한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자 내가 나의 욕구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에게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좋은 방안을 찾아 낸다면, 가치 없고 의미 없어 보이는 나의 삶에 대한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갑자기 들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분위기를 바꿔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내 삶에 대한 감정과 자세도 바꿔 준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만들어 주면 내 안에서도 삶에 대한 기쁨이 자라난다.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내게 유익하자고 이런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자신의 느낌을 신뢰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자 다른 사람에게도 퍼져 나가서 점점 더 커지고자 하는 것이 기쁨의 내적 원리이다.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감으로써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필립 레르슈(Philipp Lersch)에 따르면 기쁨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방하는, 자신을 내주는 몸짓이다." 그리고 속담에서는 "기쁨을 서로 나누면 두 배로 커진다." 고 말한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나이의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상태가 좋다."고 한다. 이 연구는 남을 돕는 일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은 자신 안에 힘이 솟아나고, 따듯함이 생겨나며, 건강한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자신에게도 확실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 일로 인해서 무척 기뻐하는 것을 나는 자주 본다. 그런 일은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상상력을 제공하여 다른 사람들을 계속 기뻐하게 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수고했지만 상대방은 받고서도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경우도 경험한다. 이런 일을 당하면 실망이 대단하다. 어린이가 생일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어느 것이 가장 비싼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비교한다면, 참된 기쁨을 가지기 어렵다. 그런 경우에는 선물을 준 사람도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나는 두 조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선물 중에서 편지 한 통을 특히 기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들의 그런 태도 때문에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선물하는 것이 내게 기쁜 일이 되었다. 어느 수도회의 장상이 나에게 와서 회원들에게 성탄 선물로 무엇을 주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더 이상 기쁨을 마련하기란 어렵 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기쁨을 줄 수도 없고 기뻐할 일도 없는 분위기에서는 생명력과 창의력이 점차 소멸 되어간다. 그런 곳에서는 삶의 의욕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삶에 대한 의욕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온갖 상상력을 발동시킬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가지는 관심에 대해 기뻐할 때 생겨난다. 「다시찾은 기쁨」에서 안셀름 그륀 지음 / 전헌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