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가도멸괵 假道滅 순망치한 脣亡齒寒

뚜르(Tours) 2009. 8. 21. 20:16

나 혼자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똑똑한 사람일까?
회사에서 회의를 열 때, 진행자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아는 것이 많다고 여기며
회의를 일방적으로 진행하거나, 아랫사람의 의견을 다 듣지 않고서 자기주장이나 의견만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회의는 회의장이 아니라 졸음이 엄습하는 연설장으로 바뀔 것이 뻔하다.
그러한 회의에서는 의견교환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물론
참석자들이 절대 의견다운 의견을 내 놓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는 생각이 모두에게 팽배한 것이다. 

회의 진행자나 윗사람은 자신이 풍부한 정보를 가졌어도
많이 알고 있지 못하며 정보가 없는 듯이 행동하면서 묵묵히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언로가 열린 채 활발한 의견교환이 가능해져,
마치 새벽 어시장의 활기를 보듯 좋은 발상이 튀어나오고 활기띠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중학교 시절 수학 시간에서 배운 원리 하나를 소개한다.
'삼각형에서 두 변 길이의 합은 빗변의 길이 보다 길다'
즉, '빗변이 아무리 길어도 남은 두변의 길이를 합친 것 보다는 짧다' 는 것이다.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만 갖고 경쟁에 나설것인가?
아니면 세변의 길이를 합쳐 대항할 것인가?
내 지혜에 조직 내 다른 사람의 지혜를 합치면 훨씬 더 큰 성과를 끌어 낼 수 있다. 

아직도 나 혼자 모든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구성원 모두의 힘을 집결해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인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서
한가지 고사를 더 소개 한다. 

바로 널리 알려진 가도멸괵 假道滅 순망치한 脣亡齒寒 의 고사다.

춘추시대 말 진나라 임금 헌공은 이웃의 소국인 우虞 나라와 괵 나라를 욕심내고 있었다.
헌공은 먼저 바로 옆에 위치한 우 나라에게 괵나라를 칠터니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소위 가도멸괵의 소사를 낳은 사건이었다.
우 나라는 충신 궁지기 宮之奇 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길을 빌려주었고,
진나라는 그 길로 달려가 괵 나라를 공격해서 멸망시킨 다음, 돌아오는 길에 우 나라마저 삼켜버렸다. 

다음은 "한시외전 漢詩外傳" 에나오는 이야기로
괵 나라의 임금이 나라가 망하자 도망가면서 마부와 대화한 내용이다. 

옛날 괵 나라 임금이 나라가 망하여 도망을 가던 중이었다.
임금이 마부에게 목이 마르다고 하자 마부는 곧 맛있는 술을 바쳤다.
또 배가 고프다고 하자 고기반찬을 곁들인 식사를 대령하였다.

"어떻게 해서 대령하였느냐? "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왜 미리 준비해두었더냐?"

"임금님께서 도망가실 때 굶주리고 목이 마르실까 봐 준비했습니다."

"그럼 너는 내가 망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던 모양인데, 왜 진작 간諫하지 않았느냐?"

"임금께서는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시고 올바른 말은 싫어하셨습니다.
저도 간언을 드릴까 생각해 보았으나 나라가 망하기 전에 제가 먼저 죽게 될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

"그래? 그럼 내가 망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임금께서 망하신 것은 지나치게 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이 번성하지 않고 망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임금님 주위에 임금님보다 현명한 사람이 없고 임금님 혼자 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마부의 말을 듣고 기뻐서 수레에 몸을 기댄 채 웃으며 말했다.

"허허, 똑똑한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다니...."

말을 마치자 그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극도로 피곤함을 느껴 마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마부는 살며시 자기 무릎을 빼고 대신 돌을 베게로 받쳐주고는 떠나버렸다.
그 후 임금은 들판을 헤매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아첨하는 말만 듣고 충언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바른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바른 말을 하는 신하는 곧 도태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똑똑한 지도자가 망한 이유는 혼자서 똑똑했기 때문인데,
사실은 임금이 가장 똑똑한 게 아니고, 아무도 그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니 그렇게 착각한 것이라 생각된다.

삼각형의 빗변이 스스로 길다고 아무리 뽐내보아도 단지 세변가운데 다른 두변보다 조금 길 뿐이다.
남은 두 변을 빼놓고 빗변만 있어서는 삼각형을 절대 완성할 수 없다. 

                 민경조 코오롱그룹 부회장  <논어경영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