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역사 시리즈(11)/배봉균(가톨릭 굿뉴스 자유게시판)

뚜르(Tours) 2009. 11. 2. 12:50
여지(荔枝)

 

 

 

꽃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동양최고의 미인 양귀비(楊貴妃)를 당 현종(唐 玄宗)은 “말하고

 알아듣는 꽃”이라며 애지중지(愛之重之)하였습니다. 원래 현종의 18 번째 아들 수왕(壽王)의 부인으로 들어 온 양옥환(楊玉環)을 현종이 수왕의 품에서 떼어내 자신의 후궁(後宮)으로 삼은 것입니다. 양귀비가  21세 현종이 54세일 때의 일입니다. 6년 후 현종은 재기(才氣) 넘치고 가무(歌舞)에 능(能)한 그녀에게 귀비(貴妃)라는 칭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양귀비가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양귀비의 친척(親戚)들은 모두 벼슬에 오르며 천하(天下)를 호령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6촌 오빠인 ‘양소’라는 건달은 현종으로부터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받아 재상(宰相)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됩니다.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양귀비는 황후(皇后)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부친(父親)은 대위제국에 추서(追敍)되었고, 큰 어니 ''''옥패''''는 한국부인, 셋째 언니 ''''옥쟁''''은 괴국부인, 여덟째 언니 ''''옥차''''는 진국부인에 (封)해 졌습니다. 현종의 극진(極盡)한 총애(寵愛)로 단숨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게된 그녀의 제자매들은 그 세력(勢力)이 강대(强大)해져 궁궐(宮闕)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막강(莫强)한 권세(權勢)를 과시하며 많은 사람들을 농락(籠絡)하며 흥청망청하였습니다. 특히 양귀비의 셋째 언니 괴국부인의 정도가 더 심하여 그 녀의 집에는 전국각지(全國各地)에서 청탁(請託)을 하러 찾아오는 관리(官吏)들이 장사진(長蛇陣)을 이루고, 그들이 바치는 진상품(進上品)들로 온 집안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한번은 괴국부인이 궁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주(公主)와 부마(駙馬)의 행렬이 마주쳤는데, 서로 길을 양보(讓步)하지 않다가 큰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이 사실을 전해들은 현종은 크게 화를 내고 평소(平素) 공주에게 주었던 물건들을 모두 빼앗고 부마의 관직(官職)마저 박탈(剝奪)하였다고 합니다. 궁궐 내에서 양씨 일가(一家)의 위치가 공주나 부마보다도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양귀비의 미색에 빠진 현종이 나랏일을 등한시(等閑視)하고 양국충이 현종의 양아들이던 절도사 안록산(安綠山)과 사사건건(事事件件) 대립하다가 결국 755년 안록산의 난(亂)이 일어나게 됩니다. 현종은 양귀비, 양국충 등과 더불어 쓰촨성(四川省)으로 도주(逃走)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不滿)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귀비도 죽을 것을 강요(强要)했습니다. 무력(無力)해진 현종은 사랑하는 귀비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結局) 귀비는 허름한 불당(佛堂)에서 명주 천으로 꼬아 만든 줄로 목이 졸려 죽는 액살(縊殺)형에 쳐해 졌으니 그 나이 37세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4대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한사람인 양귀비는 작은 눈에 풍만(豊滿)한 몸매, 아기같이 보드랍고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살결을 지닌 피부미인(皮膚美人)이었습니다. 시인(詩人) 이백(李白)은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比喩)했고, 백거이(白居易)는 양귀비와 현종의 비극(悲劇)을 ‘장한가(長恨歌)“로 만들어 노래했습니다. 타고난 피부미인 양귀비였지만 그 아름다움을 가꾸고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온천욕(溫泉浴)을 매일 하고, 피부미용(皮膚美容)에 좋다는 남방(南方)의 과일 여지‘를 즐겨 먹었습니다. 단백질(蛋白質)풍부하고 달콤 상큼한 맛이 일품(一品)인 이 과일은 수분(水分)이 증발(蒸發)하면 곧 시들어 버리기 문에 싱싱하게 수송(輸送)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다투어 며칠을 쉬지 않고 말을 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몰아 달리는 병사(兵士)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라에 매우 급박(急迫)한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하며 온갖 걱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시인(詩人) 두목(杜牧, 803~853)은 그 장면(場面)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여산(廬山)은 한 폭의 자수화

                          산마루 천 겹 문이 차례로 열리고

                          먼지 길 달려온 기마에 미소 짓던 양귀비

                          그 누가 알았으랴, 여지(荔枝) 실려 온 줄을

 


                                                                      - 끝 -

  

 

               

 

                                                                            여지

 

 :

당 현종

 

 

양귀비

 

 

 

 



등려군 / 침밀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