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실크 로드(Silk-Road, 비단 길)'',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빛은 동방으로 부터" 이말은 옛날 로마인 들이 아득한 동쪽 어디인가에 ’황금 섬’이 있다고 한 말입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머나먼 서쪽 땅에 ’이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국과 서양사이에는 기원전 100여년 전 까지는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서양 사이의 서역(중앙 아시아)에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지는 파미르 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같은 험난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곳에 사는 숱한 민족들은 한결같이 용맹하고 호전적인 기마민족들 이었습니다.
기원 전 139년 한 무제(漢 武帝)는 장건(張騫)이라는 하급관리에게 명하여 서역길을 개척하게 하였습니다. 후에 ’동양의 콜럼부스’라고 불리우게된 장건은 갖은 고초 끝에 기원 전 126년, 장안을 떠난지 13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떠날 때 100여명 이었던 일행은 장건과 그의 처자식 그리고 부하 한명 뿐이었습니다.
그 후 2,000여년간 장건에 의하여 개척된 실크 로드(천산 남.북로)를 통하여 동서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이 이 장삿길에 대하여 처음 말하고 그의 제자 스타인에 의해 실크 로드(Silk-Road, 비단 길)라고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오늘날의 대륙횡단 고속도로에 비견(比肩)될 수 있는 실크 로드를 동서 문물(東西 文物)을 가득 싣고 왕래(往來)한 동물이 있었으니 ’사막의 배’로 불리 우는 낙타(駱駝)였습니다. 수 백마리의 낙타등에 진귀한 서역(西域)의 물품을 싣고 당(唐)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에 도착하는 아라비아 대상(隊商)의 행렬은 그야말로 이국적인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잊지못할 이 인상적인 장면의 기억을 당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예술작품 당삼채[唐三彩, 흰색 바탕에 녹색, 갈색, 남색의 무늬를 넣어 여러 모양을 묘사하여 만든 도기(陶器), 특히 낙타와 아랍 상인의 당삼채가 많이 출토(出土) 되었슴]에 담아 놓았습니다.
수년 전에 남.북한은 공동 합의서를 통해 문산과 개성 사이에 끊어진 철길을 다시 복원하여 1년쯤 후면 완전히 이어 진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언젠가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산과 목포를 출발한 기차가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와 중국을 통해 유럽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철의 실크 로드’, ’신 실크 로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라는 말 대신 "모든 길은 통일된 한국(Korea)으로 부터 시작 된다."라는 말이 새로 생길 것 같습니다.
’길’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말입니다.
원시시대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다니면 자연적으로 길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 후 부락이 생기면서 각 부락과 부락을 잇는 길이 생겼고, 국가를 이루면서 국방이나 통치, 물류를 위한 큰 길이 생겼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도로공사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큰 건설회사에서 맡아서 하지만 예전에는 국방이나 납세의 의무와 똑같이 국민들이 노역을 제공하여 길을 닦았습니다.
길이 우리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라 길에 대한 속담도 많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길 아니면 가지를 마라."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 "대도 무문(大道 無門)"
"길 닦아 놓으니 미치광이 먼저 지나 간다."--- 등 등.
변변한 장비도 없이 자신의 노역을 들여 길을 닦던 우리 조상 들에게는 애환도 많았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옛날로 돌아가 조상들이 길 닦으면서 겪었을 어려움을 상상하면서, 그 분들께서 길 닦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유의할 점을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열심히 길을 닦지 않았을가 생각해 봅니다.
첫 째,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도 열심히 길을 닦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길 닦는
도구를 잘 챙겨 집을 나서겠다.
둘 째, 길 닦는 곳에 도착하면 감독관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 감독관의 지시에 잘 따르겠
다.
셋 째, 일 잘하는 사람을 본 받고 일을 좀 못하는 사람을 흉 보지 않으며,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 주겠다.
넷 째, 가끔 막걸리라도 한 통 내어 분위기를 좋게하고, 공사장에서 조그만 이익을 탐하지 않겠다.
다섯째, 감독관이 있는 큰길 공사이던 감독관 없이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마을 뒤안길 공사이던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남들이 길 닦을 때는 이 핑게 저 핑게로 요리조리 빠졌다가 다 닦은 다음에 나타나서
으시대지 않겠다.
여섯째, 동네 이장이라도 맡으면 동네 사람들이 열심히 일 할수 있도록 솔선수범하고, 개인적으로 감독관이나
면장, 군수등에게 잘 보이려고 동네 사람들을 혹사시키지 않겠다. 그리고 더욱 겸손해 지겠다.
일곱째,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훼방을 놓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동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일하는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겠다.
여덟째,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격언이 있듯이 감독관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다. 감독관
과 친해 졌다고 마치 자기가 감독관이나 된양 동네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고, 잘난 척 하지 않겠다.
아홉째, 공사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나고 동네에 돌아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겠다.
열번째, 큰 길이건 작은 길이건, 누가 보건 말건, 공사 감독관이 있건 말건, 길 다 닦은 후에 미치광이가
지나 가건 말건,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길을 닦겠다.
- 끝-
신희상
이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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