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us' Opinion

[조선데스크] 용산 신청사 몰수 못 하나

뚜르(Tours) 2010. 4. 26. 22:29
박중현 사회부 차장대우

서울 반포대교에서 남산 3호터널 쪽으로 반포로를 달리다 보면 오른편의 거대한 유리건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가분수형의 '튀는' 디자인이 눈길을 잡고, 장대한 높이와 폭은 웅장하다는 느낌을 준다. 고층빌딩이 많은 서울이지만, 이 일대는 단독주택이나 빌라, 미군부대 막사같이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어서 상대적 위압감이 엄청나다.

작년 말부터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용산구 신청사다. 1만3497㎡(4082평)의 땅에 지상 10층, 지하 5층, 44.6m 높이로 지은 건물로, 서울 25개 구(區) 청사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5만9177㎡(1만7901평)의 연면적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7만8030㎡)의 4분의 3이나 된다. 1500억원이 넘는 세금이 들었다. 인구가 서울 25개 구 중 23위(25만여명)밖에 안 되는 용산구 청사로는 지나치게 크다.

요즘 이 건물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벌써 건물에 공무원들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확인해 보니, 지난달 31일 청사가 완공됐고, 지난 8일 공무원들이 입주해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준공식이나 개청식은 없었다. 호화청사 논란이 무서워 슬그머니 입주한 것 같다.

용산구는 원효로 옛 청사가 낡고 좁아 신청사를 지었고, 구의회·보건소·문화예술회관이 함께 입주한 종합행정타운이기에 결코 과도하게 큰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옛 청사에서 쓰던 가구들도 모두 가져와 알뜰히 쓰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시민들 울분을 전혀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새 청사를 지을 때마다 "주민 자존심을 담아 지역 명물로 만들기로 했다"고 얘기하곤 한다. "멋진 청사는 주민 모두의 것"이라고도 말한다.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시민들은 그런 청사를 '우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땀 흘려 벌어서 낸 피 같은 세금으로 공무원들이 '자기들 일할 공간'을 화려하고 안락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시민들의 이런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는 공무원들 머릿속엔 여전히 '공무원은 국민의 상전'이란 낡은 의식이 박혀 있는 듯하다. 용산구 호화 청사에 대해 작년부터 그렇게 비판이 많았는데도 아무 변동 없이 완공된 것을 보니 '너희가 짖어도 우리는 간다'는 공무원들 생각이 읽히는 듯하다.

용산구 신청사는 대통령·총리·장관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와 정부과천청사를 오가는 길옆이자, 교통량이 많기로 소문난 길옆에 서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과 많은 서울시민들이 거의 매일 볼 수밖에 없는 곳에 서 있다는 점에서, 지방의 성남 신청사나 용인 신청사와는 처지가 좀 다르다. 어떻게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 건물은 두고두고 '서울 시민 분노의 근원'이자 '전체 공무원을 도매금으로 욕 먹이는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작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지자체 새 청사들을 뜯어고쳐서라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라"고 지시했는데도, 4개월이 다 돼 가는 지금 용산구 신청사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법률적으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건물을 본보기로 몰수해 100%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그 안의 공무원들은 밖으로 나가게 했으면 한다. 이 공무원들이 천막을 치고 근무하게 되고 그걸 만천하가 보게 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호화청사는 영원히 지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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