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us' Opinion

[양상훈칼럼] 30년前 대통령에 "나라 지켜달라" 기원

뚜르(Tours) 2010. 4. 28. 15:55

경험 부족한 사람들 안보 책임 자리에 '잘못되면 죽을 각오'로 안보 인사권 행사하길
박 대통령 묘소 앞 못 잊을 주부들의 글

양상훈 편집국 부국장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이 되다보니까 군(軍)도 다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매너리즘은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한다'는 뜻이다. '타성(惰性)'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요컨대 우리 군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전쟁'이 사라져서 긴장감 없이 그저 하던 대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군의 지금 모습을 표현하는 데 '매너리즘'보다 더 정확한 용어가 없다. 초계함이 침몰했는데 합참의장이 49분 만에 보고를 받았다. 49분이면 북한의 10만 특수부대가 휴전선을 넘을 시간이다. '우리 군대가 정말 군대이고, 우리 군인들이 정말 군인들인가'라고 묻게 된다.

이 매너리즘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사(人事)의 매너리즘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정부 최고 인사권자들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전쟁'이 사라져서 안보에 대한 긴장감 없이 인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장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적(敵)들과 최전선에서 맞서야 할 사람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대통령 말대로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다. 북한은 휴전 후에도 끊임없이 대남 테러를 저질러왔다. 이런 나라의 국정원장에 서울시 행정공무원 출신이 임명됐다. 그의 이력을 아무리 훑어봐도 '안보'와 '정보'의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 국정원의 사실상 2인자라는 기조실장에는 세종문화회관 사장 출신이 임명됐다. 그 역시 안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국정원의 정보판단이 믿을 만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국정원 조직 개혁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먼저 적(敵)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과거 정권 10년으로 국정원이 희극적인 수준으로까지 추락한 뒤다. 이 정부에서도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안보적 긴장감 없이 국정원 인사를 한다면 그 역시 '매너리즘'이다.

지금 우리 군 작전의 최고 책임자는 합참의장이다. 천안함 사건을 사전에 막을 책임도, 사후에 대응할 책임도 모두 합참의장에게 있다. 그 합참의장은 합참 근무 경력 없이 합참의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경력이 이렇게 된 것은 과거 정권 시절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새 정부가 그런 불이익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인사를 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합참의장이 지고 있는 책임은 그런 개인적 불이익을 보상하는 문제보다 몇십, 몇백배 무겁다.

합참은 육·해·공의 합동작전을 지휘해야 한다. 육군 출신이라면 해군과 공군을 알아야 합참의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합참 근무 경력은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 기본을 무시하고 이뤄진 인사라면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매너리즘 속에 이뤄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가 중요한 것은 그 조직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정원장, 합참의장이 임명되는 것을 보고 그 조직원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직후에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무슨 이유인지 무게감을 느낄 수 없었던 까닭의 근원(根源)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부만도 아니다. 지금 천안함과 관련해 퍼지는 황당무계한 괴담의 진원지 중 한 곳이 서울 여의도 증권가라고 한다. 북한 공격으로 밝혀지면 주식값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통 매너리즘이 아니다. 2002년 북한의 기습으로 우리 참수리 고속정이 침몰해 해군 6명이 전사했을 때 동해안에선 많은 사람들이 북한으로 넘어가서 금강산 관광을 했다. 제 군인이 적의 공격을 받고 죽은 바로 그 시점에 적의 땅에 놀러 간다는 것은 강심장이기에 앞서 무감각이고 매너리즘이다. 지금도 군인들이 전사했는데 적이 아닌 아군을 향해 "살려내라"고 한다.

27일 이 대통령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살려고하면 죽고 죽으려고하면 산다"고 이순신 장군의 결의를 그대로 썼다. 바로 그 각오로 안보책임자들을 임명했으면 한다.

열흘 전쯤 서울 국립현충원에 갔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객들이 방명록에 써놓은 글들을 우연히 보게 됐다. 주로 '고맙습니다'라는 글들이었으나, 천안함 이후엔 '우리나라 지켜주세요' '우리나라 보살펴 주세요'라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이름을 보니 주부들인 듯했다. 왜 국민들이 죽은 지 30년이 넘은 대통령에게 '나라 지켜달라'고 비는지 모두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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