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성찰

성격과 신앙

뚜르(Tours) 2010. 12. 1. 11:20

 

 

신앙과 성격의 차이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성격적인 특징들을 발견함으로써 보다 깊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밝고 건강한 사회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격과 신앙의 아름다운 조화에서

이루어진다. 에릭 버언(Eric Berne)이라는 심리학자는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성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 건강한 정신 사고를 지닌 사람일수록 ‘나도 ok, 너도 ok’, 즉 ‘나도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다른 사람과 상호 관계를 맺는 원만한 성격을 소유한

것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둘째,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일수록 ‘나는 ok, 너는 not ok’,

즉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으로 나는 할 수 있으나,

너는 할 수 없다는 식의 대인 관계를 맺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셋째, 자기 패배적이고 종속적인 사람은 ‘나는 not ok, 너는 ok’,

즉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살아라’는 자세로 자신은 할 수 없으나,

당신은 할 수 있다는 식의 자신에 대하여 소극적이다.

넷째, 자신의 삶에 대해 자포자기한 사람은 희망과 가치관을 모두 상실한 채

모든 일에 비관적이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즉 ‘나도 not ok, 너도 not ok’, 즉 ‘너 죽고 나 죽고’ 식으로 나도 할 수 없고

당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는

‘나는 ok, 너는 not ok’, 즉 ‘너 죽고 나 살자’ 또는 ‘나도 not ok, 너도 not ok’,

즉 ‘너 죽고 나 죽고’ 식에 가까운 것 같다. 이처럼 삶에 대한 모든 소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삶에 대한 흥미를 상실케 하여 공멸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풍조가 나날이

우리 사회에 퍼져 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무한 경쟁을 선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 죽어야 ∼ 산다’ 라는 식의 정서적 감정들이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시켜 모든 원망과 불평들을 타인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멸시,

롱, 비하 등을 통해 인간을 목적물로 취급하려는 부정적인 성향으로 급속히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심으로 복음에 대한 기준점이 되어 주셨다.

예수님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하고 간청하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짤막하지만

땀어린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죽이려는

원수들을 향하여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의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기꺼이 죽음으로 대신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희생은 무엇을 뜻할까? 물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지만, 나는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삶’이

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도마와 같이 예수를 팔아 한 밑천 잡으려는 자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를 발판으로 삼으려는 수단에 이용되어지는 경우들

때문에 정작 살아야 할 예수는 죽고, 죽어야 할 인간적인 것들은 더욱 살아 판치는

모습들을 본다. 따라서 먼저 주님의 깊은 뜻을 아는 우리 크리스천이 이런 긍정적인

성격과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게 됨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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