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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마르코 9장 2-13절

뚜르(Tours) 2011. 2. 25. 02:54

2월 19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마르코 9장 2-13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3
그때에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천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오늘의 묵상* 천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일본에는 ‘코이’라고 불리는 관상용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이’라는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와는 다르게 자기가 사는 장소에 따라서 크기가 달라지는 아주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조그마한 어항에 살 때에는 5~8Cm의 크기로, 조금 큰 수족관에 살 때에는 15~25Cm의 크기로 부쩍 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연못이나 강물에서 살게 되면 그 크기가 90~120Cm의 크기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사는 환경에 따라서 자신의 몸이 맞추어 사는 ‘코이’라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들도 내 환경에 맞춰서 내 몸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 마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내 자신 역시 더욱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은 어떠합니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다 포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합니다. 스토아 학파인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인간의 가치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가에 결정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이 바로 자기 마음의 크기를 더욱 더 키워서 세상에 주님을 알리는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조그마한 틀 속에 가두어 놓고만 있습니다. ‘나는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다.’라는 식의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장면을 직접 보게 된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지요.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곁에 가두어 두려는 좁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소리를 보내주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이 우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주님을 내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 말씀과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틀을 우리의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앞서 에픽테토스가 말한 인간의 가치를 가장 높이는 지름길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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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인연인 모든이들을.. ♣

감싸주고 아껴주며 그들의
아픔까지 헤아릴 수있는 아량을 주시옵소서

행여 나에게 아픔을 주는이가 있어도
생채기 난 가슴 감추고 미소로 대하도록 하옵소서

내게 주신 부모형제를 사랑함에 있어
설령 그들이 부족하여 날 서운케 하여도



그 모든걸 털어버리고 바다같은
이해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친구를 대함에 있어 변함없이 대하도록 하시옵고
친구의 허물까지 다 덮어주고 아껴주며

끝까지 기다려주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함에 있어 사랑하는
이의 허물까지 사랑하게 하옵소서

천만번의 영겁속에 맺어진 인연
헛되이 여기지 않도록 하여주시옵고

그리하여 내 목숨다하는 그날까지
그 사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하옵소서.



일을 함에 있어 항상 배움의
자세를 늦추지 않게 하옵시고

겸손함으로 자만함을 누르게 하옵시고
나로인해 상처받는 동료가 없도록 하옵소서.

어느곳 어느자리에 있던지 최고가 되도록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모습이게 하옵소서



나 자신을 사랑함에 있어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게 하옵시고

세상을 향해 당당함으로 내어놀 수 있도록
가꾸는 부지런함으로 살게 하옵소서.

남은 生동안에 이 모든것을 가슴에 담고
미소와 사랑으로 살아갈 수있도록 하옵소서.
. . . 좋은글 중에서 . .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남 또는 만나게 되어지는것과
이루어 지는 일들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인연이란 하늘이 만들어준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우리가 만들어 갈수도 있다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인연과 운명이라는 이름의 단어들로 기억되는
삶의 조그마한 부분들이 모여서 우리들의 일생이 되듯이
우연치 않은 만남의 인연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것이지요,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하게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인연들.이 모든 연들은 모두가 소중했습니다,


인연이란 삶에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어떠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습니다,

서로가 잘 가꾸고 다듬어 참 좋은 인연이되어
소중함을 느끼는 우리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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