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마태오 16,13-1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2월 22일은 고대 로마에서 가족 가운데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에 전해져서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는 축일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두 사도의 축일이 6월 29일로 지정되면서, 오늘은 베드로 사도를 중심으로,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던지시는 두 가지 질문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예수님 자신)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느냐?”
예수님 시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이란 존재는 많은 경우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들 그분께로 몰려갔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심심풀이 땅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들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예수님은 자신이 부딪친 현실적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줄 해결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들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두 번째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베드로 사도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언제나 부족했던 제자, 그래서 흔들리던 제자였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정답을 꼭 집어 말합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예수님은 그토록 학수고대해왔던 메시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당신 아들 메시아를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은 베드로 안에 늘 살아 숨 쉬고 계시며, 베드로와 늘 동행하시던 스승이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마음 안에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예수님은 이미 가족보다 더 친밀한, 연인보다 더 가까운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런 베드로였기에, 그가 그리도 나약했지만, 그가 그리도 과격했지만, 그가 그리도 부당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막중한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처신은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마구 흔들렸습니다. 늘 불안했습니다. 실수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베드로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베드로 사도, 예수님을 따라나선 길에 숱하게도 갈팡질팡했습니다. 오락가락했습니다. 아직 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십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베드로는 자신이 지닌 인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토록 잦은 실수와 방황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 제대로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끝도 없는 터널 곳에서도 오직 예수님만을 죽자 사자 붙들고 따라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