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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4주간 수요일)

뚜르(Tours) 2011. 4. 6. 14:28
 

 

 

    오늘의 묵상(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 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 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 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 들은 돋우어 주리라.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 보라, 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 족의 땅에서 온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 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 엾이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8-15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 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 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 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 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 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 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 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 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 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기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 이다."(요한 5,17-30) TV에 나온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ID)가 '나무'라고 했습니다. 식물 나무가 아니라 '나 무(無)'라는 것입니다. '나는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비우고 무화(無化)하는 것은 무아(無我) 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온 전히 무화(無化)하시어 거룩한 몸(성체)이 되셨듯이, 우리 자신이 없어지고 온전회 그분과 하나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비움'과 불교의 '비움'은 이런 의미에서 다릅니다. 그리스도교 에서 말하는 비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려는 비움입니다. 오늘 복음 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처럼 우리를 비운 자리에 주님께서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2,20)라고 했습니다. 결국 비움은 단순히 집착과 탐욕을 끊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 것을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비움의 의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비운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써 내 것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냥 비워서는 곧바로 다른 것이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 시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도 누구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할 때 비움이 시작됩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 ♧아름다운 사랑♧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섬세한 배려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어서 청년 은 결혼을 못했습니다. 청년은 어느 날부터 컴퓨터를 장만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활동을 하다가 어느 여자와 E-Mail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바다’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여자는 ‘초록물고기’였습니다. 청년이 느끼기에 여자는 박학다식하면서도 검소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보였으며, 농촌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여자와 주 고받는 메일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청년의 가슴속에는 여자를 향한 분홍빛으로 사랑이 싹틈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E-Mai을 1,000여 통을 주고받으면서, 두 사람은 무척 가까워 졌을 때 청년은 뜨거운 마음을 담아 프로포즈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까워지고자 할수록 여자는 점점 움츠려 들며 멀어져 갔습니다. 마치 눈덩어리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따뜻한 온기를 넣어주고 싶어 하지만 그 온 기에 눈물로 녹아지는 눈덩이처럼 여자는 자꾸만 작아졌습니다.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는 하루에 열통씩 오가던 메일이 사랑을 고백하고 나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답장이 오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답장은 늘 한 두 줄의 짧은 답이었습니다. 청년은 절망을 했습니다. 그토록 믿어왔던, 또 믿고 싶었던 늦게 찾아온 사랑에 더욱 더 절망을 했습니다. '누구도 시골은 싫은가 보구나. 다 이상일 뿐이야. 나처럼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 서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내가 바보지. 누가 봐도 인건 바보짓이야.' 그렇습니다. 청년은 대학을 나와서 다른 친구들 좋은 직장으로 취직을 하고자 할 때,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촌이 신음을 할 때, 농촌을 지키고자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농촌에 정착을 했지만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청년은 도무지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닉네임이 ‘초록물고기’란 것밖엔,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렇 게 빠져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무엇에도 두렵지 않던 자신이 이제는 초록물고기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째 멜 수신 확인이 안 되 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피하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 다. 청년은 다시 절실하게 여자에게 E-Mai을 보냈습니다. ♥ 초록물고기님, 너무나 절실해서 가슴으로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남들은 쉽게 잠이 드는 밤에 술기운을 빌려서 잠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 다. 그 사람이 맨 정신으로 잘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이유를 비오는 밤 사람이 그리 워서 여기저기 수첩을 뒤적여도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이 없어서 전화기를 들지 못할 정도로 서글퍼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을,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걷는 거리를 바쁘고도 무거운 걸음으로 혼자서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왜 무거워 하는지. 누가 건들지 않아도 늘 깨질 것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듯 위태하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기댈 사람이 없어 늘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쓸데 없는 생각의 깊이, 여기에 질식되어 죽을 것 같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가슴으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사 랑하는 이가 그리워도 보지 못하는 아픔을 견뎌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속이 타서 얼마나 쓰린지. 한 달 후 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초록물고기에게서 E-Mail이 왔습니다. ♠ 바다님 ! 나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하고 많은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적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얼굴도 어릴 적 덴 화상으로 흉터가 많이 있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 은커녕 집안에서 어둔 커튼으로 햇살을 가리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몸마저 이래서 누구하나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이버 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다들 저를 보면 그만 돌아섰습니다. 그 이후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 저에게 호감을 주는 남자가 있다면 먼저 돌아서곤 했습니다. 사랑을 하기도 전에 버림을 받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여워 서지요. 바다님에게 메일을 받은 순간 기쁘고 설레었으나, 바다님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는 다시 아픔을 줄 수가 없어서 바다님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 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합니까? 청년은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자의 소식이었지만, 여자의 결점을 알고 나니 혼란이 생겼 습니다. 부모님의 실망하시는 모습을 떠올리자 청년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육체 보다는 영혼이 중요하다고 자부하던 청년이었기에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자신은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는 정신을 중요시하면서 자신의 일은 껍데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청년은 여자에 게 다시 E-Mail을 보냈습니다. ♥ 초록물고기님 !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내 단 한 사람, 초록물고기님 당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또한 저에게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당신의 결점은 오히려 나에겐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위틈에 조용히 피어나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제비꽃처럼 저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록물고기가 바다의 품에서 맘대로 헤엄치는 날, 나는 비로소 내 스스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초록물고기가 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 칠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청년은 여자의 불편한 몸이 걱정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지만 사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여자의 부탁으로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서 만나기로 하였 습니다. 여자는 그녀의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3월 14일 학교에서 가장 큰 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3월 14일, 청년은 여자가 혹 못 찾을까봐 한 시간 반이나 먼저 나가 서 여자를 기다렸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애간장을 다 태우고 20분이나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교문에서부터 웬 날씬한 여자가 목발을 짚고 머리엔 노란 스카프를 두른 채 뚜벅 뚜벅거리며 청년의 눈에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혹 초록물고기님이시나요?" "그럼, 바다님 맞나요?" 여자는 부끄러운 듯이 살며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제 저를 보여 드리겠어요."하더니 여자는 안경을 벗고 스카프를 벗어서 나뭇 가지에 걸었습니다. 그 순간,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여자는 얼굴에 흉터 하나 없는 우윳빛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굉장한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목발을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 밑 벤치에 앉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놀랐나요? 처음부터 속이려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바다에서 헤엄쳐도 될까요?" 청년은 물기어린 눈빛으로 와락 여자를 껴안았습니다. 멀리 바라보는 보리밭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르티노가 여러분들의 행복을 빕니다. 2011.04.06.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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