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남산예술센타 연극 살]절제할 수 없는 욕망의 늪

뚜르(Tours) 2011. 4. 25. 13:38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살은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붙어 있는 부드러운 부분으로 가죽과 뼈 사이에 있는 것을 말하며, 사람 몸의 부드러운 느낌은 일반적으로 살에 기인하고, 짐승의 살은 식량으로 보면 고기라는 낱말이 대신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산 예술 센타는 제가 고등학생 때에 자주 찾던 드라마 센터의 새 이름입니다. 영화를 몹시 좋아하던 저는 드라마 센터 정액권을 구입하여 상영되는 영화를 모두 볼 정도였습니다.

연극 ‘살’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남산 길을 돌아 남산 예술 센타를 찾았지만, 주차할 수 없어 고생하다가 결국 아내는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가고, 저만 혼자 관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티켓 두 장을 받았지만, 한 장은 온전히 남아 아쉬웠습니다. 사전에 주차장이 없다는 안내가 필요했었습니다.



연극은 무대 뒤편 꼭대기의 어둠 속에서 나체의 한 사람이 지친 모습으로 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완전한 나체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그는 불을 움켜쥐며 무대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전문 평론가의 글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를 뜻한다고 합니다.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사함으로써 문명의 불을 지핀 거인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독수리가 매일 그의 간을 쪼아 먹도록 하는 형벌을 내렸다고 합니다.(사진은 인터넷에서 복사)



주인공 최신우는 ‘하버드 천재’로서 천부적인 감각을 소유한 ‘그레이트 딜러’라는 불리우며 모든 딜러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연봉을 받고 펜트하우스에서 살며, 부인과 딸은 미국에서 학업을 위해 거주하는 기러기 아빠입니다. 그는 외환 딜러이며, 신자유주의 사회의 상징적 존재로서 고액 연봉에, 업계 최고로 불리는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로 폭식을 즐기고 이기적이며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보니 늘 고도비만에 만성 스트레스로 간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이 치솟아 있어 운동을 해야 하나 그는 식욕, 성욕, 물욕을 향해 투신함으로서 자신을 파멸로 몰아 갑니다.



그는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적당한 안정감과 쾌락을 동시에 즐기는 등 자본주의에서 최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신우의 직장동료이자 오랜 연인인 안나는 신우가 성욕을채우는 수단으로 밖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신우의 돈을 빼돌려 그를 파멸의 길로몰아넣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우가 먼저 제안 받은 외환딜러들에게 꿈의 직장 ‘탱고’의 자리도 자신이 가로챕니다. 신우는 그런 안나에게 “꼭대기에 올라가면 다른세상이 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만류하지만, 안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망의 꼭대기를 향한 길을 선택합니다. 신우는 결국 직장, 애인,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습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복사함)




어느 날, 신우는 어머니가 간암 말기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은 간이식 수술뿐이지만, 신우는 고도비만과 망가진 간 때문에 간이식을 할 수 없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살을 빼지만 쉽지 않고, 간질을 앓고 있는 여동생과의 갈등 속에 어머니는 서서히 죽어가고, 인터넷 논객 ‘프로메테우스’로 지목되어 수사 당국으로부터 혐의를 받습니다. 또한 헤지펀드 ‘탱고’는 엄청난 연봉으로 스카웃 제의를 하지만, 딜러로서 건강해야하므로 간이식 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겁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자식의 도리, 살을 빼는 고통, 수사당국의 압박, 헤지펀드 ‘탱고’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생간이 쪼이는 고통’을 느끼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어머니는 죽고, 신우는 결국 직장, 애인, 가족 모두에게버림받습니다. 러닝머신 코드를 뽑아 목에 감아보지만 전기가 갑자기 나가버려 자살마저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첫 장면에서 알몸으로 나타나 어둠 속에서 불의 이미지를 보였던 프로메테우스는 마지막 장면에 다시 나타나며, 그는 무대 왼편의 꼭대기에서 역시 알몸으로 물끄러미 아래를 바라봅니다. 밑에는 알몸의 주인공 신우가 끝내 자신의 간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버림 받은 신우는 촛불을 끄며 막이 내립니다.



무대 위에서는 대형 스크린 형태의 공간에 짓눌린 간의 이미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숫자들로 가득 찬 외환딜러 사무실의 딜링룸의 이미지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 이미지들 사이로 움직임 배우들의 몸이 흐느적거리기도 하는데, 욕망과 외로움, 결핍의 움직임들이 식욕, 물욕, 성욕의 이미지들을 끝없이 보여줍니다.



물질적 풍요만큼이나 비대해진 결핍, 채울 수 없는 허기를 음식과 성욕으로 달래며 서서히 좌절하는 현대인의 아픔과 절규를 만날 수 있는 연극 ‘살’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연극 마지막에 불편한 장면을 마주 했습니다. 주인공 신우의 전라(全裸)의 몸은 그가 이 연극을 위해 10kg의 살을 찌웠다는 이야기와 함께 저의 기억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iprosumer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