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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뚜르(Tours) 2011. 6. 30. 21:48

 

    오늘의 묵상(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그 무렵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 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 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에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 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 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그러고 나 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에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 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 고 부르자, 그가 "애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 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아브라 함이 "애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 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 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주님 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 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 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 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창세 22,1-19)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 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애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 각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 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 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9,1-8)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은 죄와 질병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습니다(요한 9,2 참조). 그들에 게 질병은 죄의 결과이면서 또 죄의 처벌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질병에 걸리면 신체적 고통은 물론 죄인 취급을 당하는 정신적 고통까지도 함께 겪어 야 했습니다. 중풍 병자는 그래서 몸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마비된 상태인 것입니다.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처럼 이스라엘 전통과 율법에충실한 사람일수록 병으 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못했습니다. 병자들은 당영히 죄의 벌을 받는 것이기에 고통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율법을 지켜야 하므로 사람이 아무리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해도 어 떤 치료도 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보다는 법과 전통이 늘 먼저였 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법의 찬 기운만이 감돌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중풍 병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연민을 가진 사람들이 그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어쩌면 그들은 가난을 함께 나누는 약한 처 지의 이웃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법도 전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이 더 중요합니다. 법과 제도를 앞세우며 사는 사람들은 그저 조직의 구성원일 뿐입니다. 이들은 신앙 생활도 교회 규정만 잘 지키며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 은 늘 냉정합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아픔을 함께 나누는 하나의 지체가 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 는 법과 제도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믿음과 사랑으로 일하십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령께 귀를 기울이게 하시어, 주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06.30.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