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청자 담배 한 갑

뚜르(Tours) 2011. 9. 19. 22:27

청렴은 미덕(美德)이다. 
특히 공직자에게는 청렴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다. 
그것은 자존심과 명예의 기초이고, 권위의 출발점이며, 직무집행이 공정했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잣대다.

우리 법조 선배 중 예컨대 김홍섭(金洪燮) 판사와 최대교(崔大敎) 검사장은 철두철미 청렴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고인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인정어린 법관이었고, 공인으로서의 자세는 엄격했으나 사생활에서는 다정다감한 맑지만 부드러운 가을의 강물과 같은 성품을 지닌 분들이었다.

이제 위의 두 분과는 전혀 다른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사법연수원생이었던 73년께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4개월 동안 검찰실무수습을 할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어떤 절도 구속사건을 배당받아 수사를 하고 있었는데, 피의자는 가난한 고물행상이었고 사안도 그리 큰 사건은 아니어서 기소유예 처분을 하면서 석방했다. 
부장검사가 기소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 번이나 결재를 반려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가 석방된 지 며칠이 지난 후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몇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주머니 속에서 신문지로 포장한 물건을 내놓으며 자신의 성의니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가져왔다는 물건은 확인 결과 청자담배 한 갑이었다.

그것을 신문지로 곱게 싸고 다시 그 위에 신문지로 싼 것이었다. 
당시 청자담배는 구하기가 무척 힘든 때라 값의 고하를 불문하고 그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크게 호통을 치며 그를 나무랐다.
물건이 탐나 절도까지 한 사람이 어디서 돈이 나서 이런 것을 사왔느냐고 크게 꾸중했다.

그를 쫓아보낸 다음 나는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즉 나의 행위는 청렴을 의식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위선(僞善)은 아니었는가 하고.

선물을 받고 안 받고는 전적으로 나의 양식에 관한 문제이다. 
담배 한 갑이 무슨 직무와의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안 받으려면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여 돌려보내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인격적인 모욕까지 함으로써 그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아닌가. 
나는 크게 반성했다.

 
                       김원치 / 대검찰청 형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