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벌레 먹은 과일이 더 아름답다는걸 알아야 한다

뚜르(Tours) 2011. 9. 23. 10:40

194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클리어 레이크(Clear Lake)라는 곳이 있다. 
유리처럼 맑은 호수를 갖고 있어 관광업을 하며 먹고사는 동네다. 
그러다 보니 "다 좋은데 날파리들이 좀 성가시다"는 관광객들의 불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날파리라 해도 무는 곤충도 아니고 그저 얼굴 주위에서 성가시게 굴 뿐인데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호수에 살충제를 뿌리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양의 살충제로도 그림 같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만족도 잠시일 뿐 곧 더 성가신 날파리들이 나타났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많은 살충제를 뿌려야 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졌다.

이 같은 악순환은 어느 날 호수에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뜨기 시작하며 심각해지더니 급기야는 농병아리들이 떼 죽음을 당했다. 
뒤늦게나마 죽은 동물들의 조직을 검사해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농도의 살충제가 그들의 몸에 축적되어 있었다. 
물 속의 플랑크톤이나 곤충의 몸 속에는 적은 농도로 쌓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그들을 먹고사는 물고기와 또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새들의 몸에 이르면 치명적인 농도가 되는 것이다. 
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먹이사슬의 원리를 터득시켜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과일과 채소에 뿌리는 살충제도 똑같은 방식으로 먹이사슬을 기어오른다. 
곤충을 죽일 정도라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식물들이 정상적으로 제작하는 살충제 중에도 이미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엄청난 독으로 과일이나 채소들의 몸매를 예쁘게 가꾸고 있다. 
벌레 먹은 과일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과학문화시대에 사는 국민으로서 이 정도의 지식은 습득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가게에 가서 "벌레 먹은 과일은 없나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상인들이 알아서 농민들에게 살충제를 뿌리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다.

대구에 미인이 많은 이유가 사과 속의 벌레 덕분이라 들었다. 
못생긴 모과만 맛있는 게 아니다. 
과일과 채소의 한쪽 구석에 먼저 얌전하게 시식해준 벌레들에게 도리어 고마워할 일이다.
 


                   최재천 교수 지음 <알이 닭을 낳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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