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인생의 네 가지 커다란 목표는 "살고, 사랑하고, 배우고, 유산을 남기는 것"

뚜르(Tours) 2011. 11. 3. 01:53

역사를 통틀어 사회에 진정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에게 유익하고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었다.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박애주의자 중 한 사람이다. 1800년대 후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유럽 최고의 바흐 음악 오르간 연주자였다.
그는 음악의 슈퍼스타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유럽에 있는 주요 도시의 거대한 콘서트 홀에서 연주를 했다.
그는 매우 존경받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30세 때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당시에 아프리카의 문은 막 열리기 시작했고 원주민들의 고통과 궁핍을 묘사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신문과 잡지에 보도되고 있었다.

앨버트 슈바이처는 의료 사절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인생의 8년을 바쳐 열대 의학에 대한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부업으로 연주회를 개최했다.
38세의 나이로 그는 의료품을 배에 싣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는 의료품을 작은 보트에 옮겨 싣고 오고웨(Oogooue) 강을 거슬러 올라가 랑바레네(Lambarene)라고 불리는 초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거기에 텐트를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그가 53년 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그 병원은 전 세계에서 모인 40명의 의사와 전문가들, 1500명의 인원이 근무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그가 죽은 후 10년 동안 세상에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그의 이름을 딴 병원들이 많았다.
그는 100년 동안 아니 영원히 지속될 유산을 남겼다.

캘거타 자선 선교회의 테레사 수녀 또한 이 시대 가장 위대한 박애주의자이다.
그녀는 전 생애를 인도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바쳤다.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이라는 메시지는 그녀를 만난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단지 책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그녀를 보고 알았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칠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


                     "한가지로 승부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