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뒷산 수리산을 올랐습니다.
엉등이 통증도 있고 해서 차일피일 산을 멀리했는데 그 사이 가을은 깊어져 온 산이 단풍옷을 벗고 낙엽으로 덮이고 있었습니다.
약수터 뒤 만남의 광장을 지나는데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 야외 수업을 나와 있었습니다.
담임교사가 여선생님이었는데 출석을 체크하는지 주위에 학생들이 몰려 서 있었고 또 많은 학생들은 이리저리 여기저기서 작난질을 하며 뛰놀고 있었습니다.
산으로 수업(?)하러 온 학생들 차림이 가관이었습니다.
신고 있는 신발은 대부분 슬리퍼였습니다.
여학생들의 치마는 짧다 못해 엉등이만 살짝 가린 정도.
그런데 위에 걸쳐입은 점퍼들은 길어서 치마를 덮었고.
남학생들은 쫄바지에 머리칼은 길어 갈피를 못 잡겠고.....
그런 광경을 보면서 ’저 여선생님, 참 힘들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기봉을 올랐다 내려오는데 한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수리산은 산 중턱에 임도林道가 있어 산악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요람입니다.
지나치면서 보니 외국인이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열살도 채 되지 않아보이는 어린이가 자전거를 잡고 서 있었습니다.
힘이 들어 자전거를 더 이상 타지 못하고 내린 것 같았습니다.
뒤를 돌아 보니 어머니는 위에서 내려다 보기만 할 뿐이었고.
밑에 있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녀가 만약 한국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
아마도 이랬을 것’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올라갈려고 애 곁을 떠나지 않았거나, 뒤떨어진 애를 도우려고 밑으로 도로 내려왔을 것’이라고. 그리고 밑에 있는 애는 ’힘 들다고 투덜거리거나 생떼를 써지 않았을까?’ 하고.
그런데 이 모녀는 서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목욕을 갔습니다.
목욕을 하는데 소란하다 싶어 주위를 살폈더니 십여명의 청년들이 온탕에 발을 담근 체 비잉 둘러 앉아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물을 튕기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냉탕의 찬물을 온탕에 있는 친구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내 옆에서 머리를 감던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시끄러워 죽겠다’고.
그러나 우리는 적절한 대응도 못했고 대책도 없었습니다.
참고 있는 수 밖에.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더 이상 하기가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 갑니다.
손자 준서가 오랫만에 다니러 왔습니다.
오랫만이라 낯이 설어선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엄마를 졸라대며 성질을 부리는데 그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거의 생떼 수준이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지금 네살) 저런 막무가내 아이들을 ?아놓고 온종일 씨름을 해야하는 유치원교사가 ’참 힘 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내 손자 하나 행동 바로잡는 일도 어려울진데 하물며 학교 교육을 책임지거나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야 말해 무삼하리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사후 전기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를 비난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잡스는 "빌이 어릴 때 마약이나 히피생활이라도 했으면 좀 더 시야가 넓었을 것"이라고 했다나요.
ABC방송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포가 ’이런 험한 말을 듣고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게이츠는 ’잡스는 나에게 좋은 말도 많이 하고 험한 말도 많이 했어요.
우리는 30년간 함께 일했는데 경쟁자로서 서로를 자극하기도 했죠.
(나에 대한 비난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라며 담담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 독일 유학시절(1970년), 그시절 이국異國땅에서 내가 맞닥뜨렸던 충격적인 일들이 생각납니다.
길거리 광장 할 것 없이 아무데서나 붙잡고 부벼대던 젊은 남녀들.
암스텔담 광장에 깔려 있던 그 많은 히피족들.
그런 광경들을 목도하고는 이 촌사람, 넋을 잃었고 터져 나오는 탄식을 금치 못했습니다.
’멀잖아 종말이 오겠거니....’ 하며.
그러나 그나라들, 아직은 건재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옛어른들이 걱정했노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돌았고 역사는 진화 발전해 왔습니다.
’一流가 세상을 이끈다면(지키지만) 二流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암, 그래야지요.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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