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자기 결대로 산다는 것

뚜르(Tours) 2012. 3. 3. 16:49

# 무대 위에 선 사람은 중년의 사내들이었다. 개중에는 평범하다 못해 전자기타를 둘러메고 서 있는 모습이 되레 어색하리만큼 보이는 이도 있었다. 특히 50대 중반인 듯 보이는 밴드마스터 역할을 하는 기타리스트는 희끗희끗하게 세어버린 짧은 상고머리에 반팔 와이셔츠와 펑퍼짐한 양복 바지를 입은 전형적인 이웃집 아저씨였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놀랍게도 그에게서 가장 강력한 감흥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 그 기타리스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이 뭉툭하게 잘려 있는 것이 눈에 꽂혔다. 순간 직감했다. 프레스에 잘린 손이었다. 1980년대엔 학생운동을 하다 위장 취업해 서툰 몸짓으로 프레스에서 선반작업을 하던 중 그만 손가락을 잘린 이들이 적잖았다. 그 기타리스트도 그런 경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그를 ‘조 사장’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젊은 시절 보컬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다 중단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든 후 직접 프레스에 선반작업을 해가며 작지만 기업을 일궈가던 삶의 고투 어린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잘린 손가락 사이에 피크를 낀 채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먹고살 만해져 여흥을 즐기기 위해 무대에 선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하고 싶은 것을 더는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끊어냈던 자신의 결을 다시 찾고 잇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 무대에 서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멋지다!”라고 말한 것에 나는 차라리 화가 날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되받아 말했다. “저건 그저 멋있는 게 아니라고! 처절한 거야. 피 터지게 처절한 거!!”

 #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그렇다. 우리 삶은 선택이란 이름 아래 어떤 길을 간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이기보다는 떠밀림이라고 말해야 옳을지 모른다. 그렇게밖에는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단 어떤 길에 들어서면 여간해선 다시 돌아 나오기 쉽지 않다. 못마땅해도 그냥 가는 도리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 사장이라 불리는 그 중년의 기타리스트는 젊은 시절에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을 이제 먼 길 돌아와 다시 걷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자기 결대로 사는 것임을 절절하게 느끼기 때문이리라.

 # 한 사람 건너 내 앞자리에 앉은 여인이 그 기타리스트의 아내라고 누군가 내게 일러주었다. 비록 그녀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직감했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고 싶었던 길을,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삶의 어쩔 수 없음 때문에 내려놓고 접었어야 했던 한 남자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의 속 깊은 눈길이 내게까지 느껴졌다. 삶의 먼 길을 에둘러 이제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뒤늦게나마 다시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은 따스했다. 그 눈길을 받아서인지 무대 위의 남자는 멋쩍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외려 눈물이 났다. 아니 고마웠다. 자기 결대로 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눈물 나게 고맙고 아름다웠다. 그날 그는 정말이지 자기 인생의 콘서트를 펼치고 있었다.

 # 사람은 저마다 결이 있다. 하지만 그 결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자기에게 어떤 결이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나마 자기 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이다. 그리고 자기 결대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 사람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며 위대하다. 나는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자기 결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이 곳곳에서 꿈틀거릴 때, 그리고 그 결들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닐까?

 

                 정진홍 /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