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외출 준비에 분주한데 느닷없이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 부부를 뭐라고 생각해요?”
이크, 이건 웬 호미걸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당신에게 내가 뭐냐구요?”
이럴 땐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 걸려들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릅니다.
“그야 다정한 친구지. 평생의 동반자!”
아내의 표정은 ‘흥, 무슨 헛소리?’하는 툽니다.
“그게 말이야. 세월이 흐르는 데 따라 변하는 거 아냐? 뜨거웠던 젊은 시절엔 한 시라도 못 보면 죽을 것 같은 애인이고, 살다 짜증나고 피곤해지면 웬수? 아니, 스파링 파트너? 그런데 이렇게 오래 함께 부대끼며 살다보니 이젠 도로 없으면 못살 것 같은 단짝친구처럼 느껴지네.”
그제사 아내는 잠잠해집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혼잣소리처럼 읊습니다.
“편안함, 정겨움, 아름다움…”
역시 여자들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저런 몽롱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가 봅니다. 어쨌거나 아슬아슬 테스트에는 일단 통과한 모양입니다.
정말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었을까? 이른 아침부터 눈만 뜨면 틀어놓는 FM 음악방송에서 아마도 누군가 싱거운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되돌아보면 눈물콧물 흘려가며 몰래몰래 편지 주고받던 열애기도 있었지만 차라리 없는 게 나아, 하고 생각하던 권태기도 없지 않았습니다. 또 지각없이 아무데나 도장을 찍어 감당 못할 짐을 떠안고 예상치도 못한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잘못을 들추어 더욱 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큰 병을 얻게 되면서 서로에게 불편했던 마음의 찌꺼기들은 씻은 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명절 연휴에 발병해 응급치료도 변변히 받지 못한 탓에 아내는 꽤 오래 후유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따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그러니 이제 무슨 전의를 되살려 싸움을 재개하겠습니까.
고통스러운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병은 아픈 사람에게나 그 가족들에게나 생각을 깊게 하고 철이 들게 하는 명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은 출혈을 요구하지만 인간을 그만큼 성숙하게도 합니다. 병상에 누우면 정작 건강할 때 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병이 중할수록 가까웠던 이들은 물론 모질게 싸웠던 이들까지 생각나고 그리워집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독한 싸움으로 마음이 멀어진 부부, 냉랭하게 등 돌리고 잠자던 부부라면 그런 화해의 찬스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에 에데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 속에 피어오르는/ 아내의 미소. (밤은 에데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螺旋通路)를/ 내가 내려간다.
왠지 서글픈, 그러면서도 은은한 달빛처럼 위로와 안도가 느껴지는 시, 박목월의 ‘우회로(迂廻路)’입니다. 교과서에선가 읽었던 이 시를 서정 넘치는 시인이 왜, 언제, 어떤 사연으로 쓰게 됐을까 궁금했었습니다. ‘밤에 쓴 인생론’이란 그의 수필을 읽어 보니 그 배경에 짐작이 갔습니다.
목월의 아내 유익순 씨는 이태 동안에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답니다. 처음부터가 목숨을 걸 만큼 위중했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 큰 바람을 일으키며 도피행각까지 벌인 남편을 끝내 하늘처럼 떠받들며 기다려 준 아내였습니다. 전신마취를 받고 수술실에 들어간 지 열한 시간. 초조감에 복도에서 줄담배를 태우며 목월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는 살아서 돌아와 줄까.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무엇인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 절박한 심정 속에 그는 이런 결론을 얻습니다.
애초 둘은 성격적으로 동행이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보다 한 걸음 뒤처져 걸었습니다. 아내의 찬찬한 성격이 평생 남편을 괴롭혔고, 남편의 급한 성격이 평생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부부의 이해를 넓히고 유대를 강화했습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인생의 쓰고 괴로운 길을 함께 걸어 이룩한 인간적인 관계, 이해와 신뢰로 이룩한 세계가 바로 부부라는 것을 목월은 깨달게 되었답니다.
노년에 이르면 누구든 건강을 자신할 수 없게 됩니다. 젊을 때와 같은 미모나 패기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나마 남은 빽이라면 서로 등 긁어주고 병들었을 때 시중들어 줄 부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하루라도 일찍 부부의 소중함을 깨우쳐야 합니다.
아들 내외에게도 이렇게 당부합니다.
“괜한 혈기로 티격태격하지 말고 그저 친구처럼, 오누이처럼 살아라!”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 부부에게 부탁할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부모 모시는 젊은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 역시 노부부가 큰 병 없이, 사이좋게 해로하는 것일 테니까요.
방석순의 <프리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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