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체인 식당의 강점은 품질관리가 잘 된다는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동일한 가격, 동일한 음식의 양과 맛, 심지어 돈을 대신 내 줄 것도 아니면서 "계산 도와드리겠다"는 비논리적 말투를 쓰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획일화된 맛이다. 대기업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제대로 먹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손맛’을 최고 맛으로 치는 우리에게 획일화된 공식으로 만든 음식은 ’사료’와 비슷하다.
대기업의 공세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손맛 있는 식당’’소박한 식당’일 것이다. 오로지 그런 식당을 찾기 위해 가끔 차를 타고 먼 도시까지 간다. 큰 행사가 열린다는 지방 도시에 여행을 다녀왔다.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는 인터넷 서핑을 통해 괜찮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8000원이라던 꽃게찌개는 두 달 만에 1만원이 되어 있었고, 1인분이라도 정성으로 차려낸다던 그곳은 "무조건 2인 이상"을 반복했고, 안 먹겠다는 아이 말에는 "머릿수대로 시켜야 한다"고 했다. 1인분에 2000원씩 더 냈을 뿐인데 이상하게 밥맛이 없었다. 카드를 냈더니 카드를 긁을 줄 모른다며 현금을 달라는 눈치다.
광화문의 한 분식집은 잔치국수 한 그릇에 3000원이었다. 일본·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이 분식집에서 영어·일본어·중국어가 들렸다. 이 식당이 진짜 ’글로벌 식당’이라고 농담을 하다가 메뉴를 봤더니 국수가 4500원이 되어 있었다. 이 집에서 손님에게 입 닦으라고 주는 휴지는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다. "식당용 냅킨 좀 갖다 놓으시라"고 했더니 "남는 거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2000원 떡볶이도 3000원이 된 지 오래다.
"요즘 욕쟁이 할머니 집에 가면, 맛도 정도 없고 그냥 반말만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런 태도와 생각을 가진 동네 식당이 개선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콧구멍만 한 식당 하는 사람한테 무슨 소리냐"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긴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노점상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말이다.
대기업 레스토랑이 이런 일을 했다면 간판을 내릴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말이다.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관대한 시선은 성숙한 사회의 기본 정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약자에 대한 관대함’은 그들의 몰염치를 방관하고, 몰염치에 대한 면죄부를 강요하는 것과는 다르다.
골목 상권은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키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상권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성심껏, 양심껏 일하는 상점 주인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큰 것은 나쁘다’ ’작은 것은 언제나 옳다’는 일방 논리는 ’노력해서 커지는 것’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것’의 미덕을 사회 전반이 폐기케 하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논리가 산업계와 사회 전체에 퍼진다면 작은 것들은 언제까지나 큰 것들 탓만 하면서 그 모양, 그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요즘은 말이야, 아무도 가난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 가난을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이른바 ’구조적 모순’으로 개인의 나태함이나 불합리를 합리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말이다. 정말 우리 사회는 큰 놈들만, 큰 것들만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들을 다 후려 패버리고 나면, 작은 것의 경쟁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일까.
박은주 / 조선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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