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호 칼럼] '후보 단일화'보다 더 절실한 것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을 합쳐야 비로소 박근혜 한 사람의 45% 콘크리트 지지도를 넘볼 수 있는 야권(野圈)의 절박한 사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 야당은 왜 단독으로 50%를 넘어 '나 홀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가. 뿌리 깊은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당이 어쩌다 대선 때마다 출현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제3 세력에 매번 매달려 '먹느냐, 먹히느냐'의 아슬아슬한 도박판을 벌이는 신세가 되었는가. 야당이 이런 비루한 신세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혹자는 1987년 양김(兩金) 분열과 뒤이은 1990년 3당 합당(合黨)이 우리 정치 지형을 뒤틀어놓은 탓이라고 한다. 일부는 맞지만 모두 맞는 말은 아니다. 3당 합당 이후 치른 대선 네 번의 결과는 현재 여야 기준으로 2대2 무승부였다. 김영삼 정부 이래 네 정부 20년 중 절반을 현 야당이 집권했다. 만약 현 야당이 자신들의 집권을 가능케 했던 정치 기반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정치 세력화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민주당이 지금처럼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무소속 후보에게 당 전체를 넘겨줄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게임에 온몸을 싣는 처지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대중(DJ) 정부 탄생을 도운 건 김종필(JP)과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한 이인제였다. JP는 후에 "속았다"며 DJ 정부를 떠났고, 이인제는 민주당을 거쳐 돌고 돌다가 얼마 전 한나라당 후신(後身)인 새누리당으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부 탄생을 도운 정몽준은 이인제보다 몇 발 앞서 새누리당에 몸담았다. 돌이켜보면 새누리당 쪽 문제는 '배부른 자들의 분열'과 그 분열을 뜬눈으로 방치한 '자폐적(自閉的) 리더십'이었다. 반대로 민주당은 상대 진영에서 밀려난 인사나 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집권할 수 없었던 한계를 뼈저리게 겪고 나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성찰(省察)이나 몸짓을 보여주지 않았다.
DJ 시절 이래 민주당은 늘 양당제(兩黨制)를 주장해왔다. 양당제의 한 축이 현 새누리당 쪽 세력이라면 그에 맞설 다른 축은 민주당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주장 아래 총선이든 대선이든 결정적 승부를 가를 시기가 되면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은 모두 민주당 깃발 아래 집결하라는 소집령을 내리곤 했다. 그러나 소집령만 내리면 먹히던 시절은 지났다. 10년 전 정몽준에 이어 안철수가 거꾸로 대통령 자리를 내놓으라고 민주당을 향해 큰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이 양당제의 당당한 한 축으로 대접받으려면 실력을 늘리고 몸집을 더 키워야 했다. 민주당은 집권 시절 그 길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JP 도움을 받아 집권한 DJ는 집권 후 DJ의 길로만 갔고, 정몽준 세력 지지까지 모아 집권할 수 있었던 노무현은 노무현의 길로만 갔다. 집권을 가능케 했던 정치 기반을 지속 가능한 정치 세력으로 묶는 작업엔 두 사람 다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오로지 후보 단일화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안철수 현상'을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대선에서 이기고 나면 곧바로 '선명한 문재인 깃발'을 들고 나설 태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가서 보게 될 장면은 불 보듯 뻔하다. 집권을 가능케 한 정치 기반을 지속 가능한 정치 세력화하는 데 또다시 실패할 것이고 국민은 5년 후 등장할 또 다른 메시아가 이끄는 제3 세력과 민주당이 벌이는 단일화 굿판을 다시 구경하게 될 것이다.
양당제는 두 정당이 서로 경쟁하며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권을 주고받을 때 그 순기능이 커진다. 그러려면 양쪽 몸집이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지 않을 정도론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한쪽은 다수파, 다른 한쪽은 소수파 의식에 젖어 있으면 정치도 국정도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못한다.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 없이도 단독 집권을 노릴 수 있는 정당이 되는 길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과거 집권했을 때 어떻게 하면 DJ만의 길이 아니라 DJP의 길을 가고, 노무현만의 길이 아니라 노무현·정몽준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를 냉철하게 되짚어보면 된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이 길이다.
민주당이 단독 집권의 새 길을 만들어 갈 자신이 없다면 양당제의 한 축으로 누려온 기득권을 이제는 내려놓고 다른 야당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 때문에 숨 쉴 공간을 찾지 못해 아우성치며 신음해온 야당이 어디 한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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