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무'의 지혜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10월부터
이듬해 꽃 소식이 전해지는 3월까지,
제주도를 찾는 관람객들은 콩알굵기만한
빨간 열매를 수천 개씩 달고 있는
아름다운 가로수에 감탄하고만다.
"저 나무가 먼(무슨) 나무요?"라고 물으면
되돌아오는 답이 우스꽝스럽게도 "먼나무"다.
그래서 '영원히 이름을 모르는 나무'를
먼나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먼나무의 매력은 꽃이 아니라 열매다.
가을이면 연초록 빛의 잎사귀 사이사이로
붉은 콩알같은 열매가 커다란 나무를
온통 뒤집어쓰고, 겨울을 거쳐 늦 봄까지
그대로 매달려 있다.
거의 반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열매를
힘들게 매달고 있는 먼나무의 속뜻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종족보존을 위한 투자다.
멀리 미지의 땅에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새와의 전략적인 제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새 들새는 겨울 내내 배고픔에 시달린다.
새가 겨우살이에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먹을거리를 제공할 터이니 대신 씨를 멀리
옮겨달라는 계약이 둘 사이에 성립된 것이다.
새의 눈에 잘 띄도록 짙푸른 초록 잎 사이로
수많은 빨간색 열매가 얼굴을 내밀도록 디자인 했다.
물론 새의 소화기관을 지나는 사이
씨는 그대로 남도록 설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나무의 이런 더불어 사는 영특한 지혜 덕분에
겨울 제주의 풍광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무의 세계 / 박상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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