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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주님 공현 후 금요일)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물[세례]과 피{십자가상의 죽음]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드러났다. 이 모든 일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다(제1 독서). 예수님 시대의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이는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만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 주셨다. 이로 써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 위에 있는 분,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시는 분, 생명 을 주시는 분으로 드러난[공현] 것이다(복음). 제1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 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 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 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 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 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 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 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 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5, 5-13) 복음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 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 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 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카 5,12- 16)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며 왜 굳이 그의 몸에 손을 대셨을까요? 사실 다른 대목에 보면 한 말씀만으로도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 다는 것은 그동안 나병 환자를 그 누구도 만져 주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만져 줌'(touch)을 통한 사랑을 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습니다. 원숭이를 상대로 실험했습니다. 어린 원 숭이를 만져 주지 않았더니 우울증과 여러 질병에 시달리다가 요절하고 말았습니 다. 버려진 아기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생후 10주에서 6 개월 사이의 아기들을 조사한 결과, 엄마가 잘 쓰다듬어 준 아기는 그렇지 못한 아기에 비해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고, 또 잘 토하거나 설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다른 연구로서는 이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신경질적이거나 우울증이 있는 성 인 여자는 포옹 횟수가 많고 포옹 지속 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 도가 빨랐습니다. 다른 이에게 사랑의 손길로 다가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생명을 줍니다. 아니,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손이 가게 되고 그 손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 겠지요. 그래서 엄마의 손이 약손이 되고, 예수님의 손이 생명의 손이 되었겠지 요. 두 손 다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파괴의 손입니까, 생명의 손입니까? (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별의 인도로 구세주의 탄생을 일러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세주를 믿으며,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2013. 1. 11. Martinus Handel / Hallelujah
오늘의 묵상(주님 공현 후 금요일)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물[세례]과 피{십자가상의 죽음]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드러났다. 이 모든 일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다(제1 독서). 예수님 시대의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이는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만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 주셨다. 이로 써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 위에 있는 분,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시는 분, 생명 을 주시는 분으로 드러난[공현] 것이다(복음). 제1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 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 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 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 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 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 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 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 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5, 5-13) 복음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 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 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 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카 5,12- 16)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며 왜 굳이 그의 몸에 손을 대셨을까요? 사실 다른 대목에 보면 한 말씀만으로도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 다는 것은 그동안 나병 환자를 그 누구도 만져 주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만져 줌'(touch)을 통한 사랑을 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습니다. 원숭이를 상대로 실험했습니다. 어린 원 숭이를 만져 주지 않았더니 우울증과 여러 질병에 시달리다가 요절하고 말았습니 다. 버려진 아기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생후 10주에서 6 개월 사이의 아기들을 조사한 결과, 엄마가 잘 쓰다듬어 준 아기는 그렇지 못한 아기에 비해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고, 또 잘 토하거나 설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다른 연구로서는 이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신경질적이거나 우울증이 있는 성 인 여자는 포옹 횟수가 많고 포옹 지속 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 도가 빨랐습니다. 다른 이에게 사랑의 손길로 다가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생명을 줍니다. 아니,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손이 가게 되고 그 손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 겠지요. 그래서 엄마의 손이 약손이 되고, 예수님의 손이 생명의 손이 되었겠지 요. 두 손 다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파괴의 손입니까, 생명의 손입니까? (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별의 인도로 구세주의 탄생을 일러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세주를 믿으며,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2013. 1. 11. Martinus
Handel / Halleluj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