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비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버리고는 내내 점심을 굶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교사가 있다.
술집 여자 패션을 하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 애간장이 타는 어머니가 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을 보면 탈선학생이나 불우 청소년을 떠올리는 어른이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상품이 홍수를 이루는 소비사회란 바로 소비가 미덕인 사회를 말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서는 잘 써본 사람이 잘 번다.
좋은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일류호텔의 주방장이 되고,
맵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아이가 잘 나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다.
후기 근대를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생산자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소비에 치중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아끼라고 말하기보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어릴 때부터 심부름을 하면서 돈을 벌고, 중/고등학교 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아이들은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돈을 그렇게 헤프게 쓰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전혀 그런 기회를 주지도 않고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나무란다.
소비사회의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그것을 얻기가 힘들어지면 아이들은 자원을 독점한 기성세대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감을 갖게 된다.
돈을 마구 쓰고 몸을 마구 굴리게 되는 것은 지금 어른들이 자원을 독점하고 아이들은 자기 식대로 관리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자원을 나누자.
스스로 돈 관리, 몸 관리를 할 수 있게 자율의 공간을 마련해 주자.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이 있듯이, 과잉의 시대를 살아남는 전략이 있다.
그 전략은 금지와 금욕이 아니라 체험과 자기 기획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조한혜정 / 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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