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례나 기일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떠오르는 쟁점이 있다. 상차림에서 어떤 음식을 어떤 위치에 놓느냐의 문제다. 형제가 많다 보면 저마다 아는 것이 달라서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다.
어떤 것에서든 너무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을 보면 딱하다. 한때는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주장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하면 남의 주장을 들어주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에 간단한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 잔뜩 겁을 먹은 남편이 수술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 수술을 마친 다른 환자가 회복실로 가기 위해 베드에 실려 나온 모양이다. 남편은 얼른 따라붙었다. 놀란 가슴이라 눈코입만 겨우 보이는 환자가 아내인 줄로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 남자가 따라오더라는 것. ‘이놈은 왜 남의 부인을 따라오나’ 생각하면서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그때 침대에 걸린 환자 이름표가 보였는데 ‘윤세영’이 아니고 ‘김○○’였다. 이쯤 되면 얼른 알아채야 하는데 남편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환자 이름을 왜 빨리빨리 바꿔 놓지 않는 거야.’ 그러면서 눈을 꼭 감고 있는 환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뿔싸!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남편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얼른 내렸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였다. 부지런한 남편은 아침마다 먼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갖고 나와 나를 기다린다. 그날도 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에이, 늦게 내려온다고 삐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거기 늘 그 자리에 우리 차와 똑같은 자동차 한 대가 서 있기에 조수석 문을 확 열었다. 그 순간,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데 남편의 얼굴이 아니었다.
‘남편 얼굴이 왜 저렇게 생겼지?’
남의 차 문을 열었다는 생각은 못하고 멍 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그분이 말했다. “아∼ 금방 나오실 거예요.” 그 말조차 해석이 안 돼 멍하니 서 있다가 후다닥 정신을 차린 것은 ‘삐∼’ 하는 출차 경고음과 함께 우리의 까만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였다.
“창피해, 우리 이사 가자.”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남편은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것 봐. 당신도 착각할 수 있지?” 남편은 병원 일로 놀림을 받은 터라 대뜸 복수했다. 환자의 이름표에 다른 이름이 적혀 있는데도, 운전자가 남편이 아닌데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그만큼 사고가 경직되었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 사건 이후에 우리는 상대가 빡빡 우길 때마다 한마디 한다. “남의 아내 따라간 주제에!” “남 말 하네. 남의 남편 차 탈 뻔한 주제에!”
올 설에는 서로 우기지 말자. 아무려면 우리 조상님들이 반찬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못 잡수실까. 이번 설에는 입보다 귀를 열면 좋을 것 같다.
윤세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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