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고향 사람, 그리고 Same Language

뚜르(Tours) 2013. 3. 20. 08:46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던 공자가 아차하는 사이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이 농부의 밭으로 들어가 농작물을 망쳐 버린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농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말을 끌고 가 버렸습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가서 말을 되찾아오겠느냐?"
"제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평소에 말주변이 좋다는 제자 자공이 선뜻 나섰습니다.
그러자 마부도 함께 나서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일은 제가 말을 잘 지키지 못해서 생긴 일이므로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그래도 자공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공자의 이 말에 자공이 어깨를 으쓱이며 농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자공이 아무리 입이 닳도록 빌고 설득해도 농부가 말을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농부의 손에 잡혀 있는 말고삐를 강제로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일이어서
자공은 맥빠진 모습으로 그냥 되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마부를 보냈습니다.
마부가 웃으며 다가가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다같은 농부가 아니오?
내가 깜빡 조는 사이에 말이 밭으로 들어갔으니 이해하시구려."
마부의 이 말에 농부가 허허 웃더니 군말 없이 말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유유상종이라 하여 사람들은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껴 쉽게 동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도 선비인 자공보다 배우지 못한 마부가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자공이 마부와 똑같은 말을 해도 농부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공의 선비 복장과 말투에서 농부는 이미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처음부터 마부를 보내지 않고 자공을 보냈을까요?
공자가 마부를 먼저 보내면 자공은 속으로 불만을 품을 것입니다.
자기도 그 정도의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에 서운한 감정을 품을 것입니다. 공자는 자공이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고, 또한 대하는 상대에따라 사람마다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아일랜드 시골 사람이 처음 외국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로마에 갈 참입니다.
점보 비행기 창 밖으로 대지가 아스라이 멀어지며 온 몸이 짜릿해지더니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볼 일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선 농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앉은 자리는 발도 뻗지 못할 정도인 데다 승객이 꽉 차 비좁기 그지 없는데, 바로 앞에는 엄청나게 큰 좌석에 손님도 손가락 셀 정도 밖에 안되는 별천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을 내팽개치지 않았습니다.
안락한 자리에 앉자마자 스튜어디스가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손님, 여기는 퍼스트클래스인데요. 손님 자리로 돌아 가 주세요."
’퍼스트 뭐? 나도 돈 주고 탔는데..... 손님을 왕으로 모시겠다더니.......’
연약한 스튜어디스로서는 아일랜드 농부의 황소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고참 스튜어디스의 화사한 미소도, 총을 찬 기내 보안관의 험상궂은 인상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기장이 나섰습니다.
"어디 승객 중에 아일랜드인이 없나 알아 보지."
겨우 농부의 고향 사람을 찾아 설득을 부탁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일랜드 사투리가 2 ~ 3분 오가더니,
농부가 후다닥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승무원이 물었습니다.
"뭐, 별 말 안했습니다. 그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죠.
로마에 간답디다.
그래서 여기는 파리행이고, 로마행은 뒷좌석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죠."

 

고향 사람의 재치있는 설득은 정말 값지지 않은가요?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인물은 바로 농부의 고향 사람같은 인물입니다.

 

/박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