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식에서 성 요셉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하느님 선물’의 ‘수호자’로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 모두를 사랑하고 보살필 것을 권고하며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수호할 것을 강조했다.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인 19일 오전 9시30분(로마 현지시각) 거행된 즉위식에서 교황은 ‘수호자’로서 요셉 성인의 역할을 지적하면서, “우리들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수호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의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서”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자고 말했다.
20만 명의 시민들과 순례자들이 운집한 성베드로광장에서 마련된 제266대 교황 즉위식은 소박하고 검소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듯 대성당 입구 계단에 작은 그늘을 드리울 정도의 단촐한 제단에서 거행됐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입고 있던 제의는 장식이 없이 단순했고, ‘어부의 반지’는 도금한 것이었다. 경호 인력은 최소화돼 교황의 얼굴을 보고 악수를 나누는데 걸림을 최소화했으며, 앞뒤와 지붕이 방탄 유리로 덮였뎐 교황 전용차가 이번에는 네 면이 모두 뚫려 교황이 허리를 숙여 사람들과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했다. 교황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흔들고, 갓난아기를 넘겨받아 볼에 입을 맞췄다. 장애인을 만나서는 차에서 내려 직접 악수를 나누고 입을 맞췄다.
교황은 성베드로대성당에 도착해 제대 밑에 위치한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무릎을 꿇고 수분 동안 기도를 바쳤다. 무덤 위에는 팔리움과 교황권의 상징인 ‘어부의 반지’가 놓여 있었다. 시스티나성당에서 새 교황의 탄생을 선포했던 장 루이 토랑 추기경이 교황의 어깨에 팔리움을 얹고 추기경단 단장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어부의 반지를 끼워주자 광장에는 새 교황의 탄생을 축하하는 환호성이 물결 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을 통해 “‘수호자’로서의 소명은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며 “이는 모든 피조물, 창세기에서 선언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호하라는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그것은 모든 피조물과 환경을 존중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모든 이들, 특히 자주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어린이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이 ‘수호자’의 소명은 “신뢰와 존경, 선의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신실한 우정을 구축하는 것”이며 “마침내 세상 모든 것이 우리가 수호해야 할 대상이며, 우리 모두가 그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식
성품 따라 간소하게 마련
“하느님 은총의 수호자 되십시오”
“하느님 은총의 수호자 되십시오”
발행일 : 2013-03-24 [제2838호, 1면]
▲ 19일 즉위미사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새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에 대한 13가지 주요사실
발행일 : 2013-03-24 [제2838호, 10면]
영국 가디언지는 교황으로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해 ‘새 교황에 대한 13가지 주요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는 소주제의 이 기사는 각종 외신들에 번역되며 새 교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평이다.
1. 버스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2. 폐 하나로 50년 이상을 살아왔다. 그는 감염으로 인해 젊은 시절 한 개의 폐를 제거한 적이
1. 버스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2. 폐 하나로 50년 이상을 살아왔다. 그는 감염으로 인해 젊은 시절 한 개의 폐를 제거한 적이
있다.
3. 이탈리아 철도청 직원의 아들이었다.
4. 화학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5. 근세시대 들어 선출된 첫 비유럽계 교황이다.
6. 동성애자들이 아기를 입양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콘돔이 감염을 방지하는 것에 허용될 수 있
다고 믿는다.
7. 2001년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춘 적이 있다.
8. 스페인어나 독일어만큼 유창한 이탈리어를 한다.
9. 지금까지 공식적인 주교 관저를 거부하고 작은 아파트식 주거지에서 살아왔다.
10. 만약 교황이 된다면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축하하기 위해 로마를 찾지 말고 대신 그들의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말했다.
11. 2005년 콘클라베에서 마지막 교황 후보자로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천국과 지상’이라는 스페인어 책을 공동집필한 바 있다. 아마존 킨들에서 그 책을 살 수
있다.
13. 교회의 교리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미혼모들의 아기들에게 세례주기를 거부한
사제들을 비판해왔다.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가톨릭신문
새 교황의 과제
시대 요청하는 화해 현장 찾아 복음선포를
그리스도적 가치 약화되는 현실 극복해야
그리스도인 일치·종교간 대화도 추진 과제
그리스도적 가치 약화되는 현실 극복해야
그리스도인 일치·종교간 대화도 추진 과제
발행일 : 2013-03-24 [제2838호, 12면]
▲ 새 교황은 이 시대가 요청하는 화해의 현장을 찾아 새롭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종교간 대화 등도 교황이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모두 서로 사랑하고 하나의 찬미가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며 서로 교류할 때에 우리는 교회의 근본 소명에 부응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9항)
교황은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수없이 부침과 영욕을 거듭해온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려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도록 지상의 여정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상으로 인해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세상, 인간과 인간 간의 화해를 중재하는 ‘화해의 사도’로 불려왔다. 하느님, 이웃, 창조계 전체와 화해를 이뤄나가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할 때,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한에서만 화해의 교회라고 할 때, 교황이 진 십자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온갖 불목과 불신, 불신앙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상처를 입은 교회가 참 화해에 이르기까지 새 교황이 걸어갈 길이 멀게만 보이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참다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끊임없는 회개를 밑거름으로 한 화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 천년기 들어 두 번째 지상의 대리자로 뽑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앞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십자가가 가로놓여 있는 모습이다. 새 교황이 걸어가야 할 화해의 길을 되새겨본다.
■ 세상과의 화해
지난 4일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첫 전체회의를 열었을 때 묵상거리로 받아든 주제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문제점들과 새 교황 선출에 요구되는 신중한 분별력’이었다. 달리 말해 새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화해의 현장을 찾아 새롭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새로운 교황의 눈에 무엇보다 선명하게 부각되는 화해의 현장은 세상과의 불화, 단절로 인해 끊임없이 파생되는 문제들이 있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기 파괴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세속주의,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생명과 인권 등 인간존엄성 문제, 가정과 혼인 등 전통적 가치관의 혼란 문제 등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가톨릭교회를 둘러싼 이러한 암울한 현실들은 새 교황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절대적 복음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대주의가 갈수록 교회 안팎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그리스도적 가치가 다른 세속적 가치들 속에서 희석되고 있는 현실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입장에서 이런 시대적 조류는 거대한 역풍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근대 들어 역대 교황들은 서구사회가 겪는 신앙 위기의 원인이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고, ‘새로운 봄’을 재촉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임기 중 ‘새로운 복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도 이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시대 조류와 교회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고대했던 것을 모두 제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과학적 지성 체계는 신앙 문제를 태곳적 일이나 신화적인 것, 또는 지나가 버린 문명에나 속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적어도 그리스도교는 과거 유물로 취급된다.”(대담집 「신앙의 빛」 208쪽)
따라서 세속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앞두고 새 교황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역점을 둔 새로운 복음화 과제에 새롭게 다가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대륙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세상의 흐름들은 새 교황이 맞닥뜨린 현실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유럽의 세속화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 아메리카 대륙의 성적 방종, 남미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웃종교와의 경쟁 등 각 지역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이함은 어느 한 지역, 한 계층의 교황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교황의 존재가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한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종교간 대화도 새 교황이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교황에 오른 후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에서 이를 교황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간 화해와 평화가 인류 평화의 가늠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황의 몫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교회 안에서의 화해
일치의 강화
새 교황에게는 각 대륙 다양한 신자들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다져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주어져 있다.
현대 들어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들이 범람하면서 지역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교회와 지역교회들 사이, 교황청과 지역교회들 간에도 적잖은 파열음이 노정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교황 선출 준비회의에서도 여러 추기경들이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역교회의 자율성과 주교단 단체성이 더 존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이 같은 현실은 교황청과 지역교회 간 유기적인 소통의 부재, 교황을 필두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의 불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 여성사제 서품 문제를 비롯해 사제 독신제, 피임 등 현실에서 첨예하게 부닥치는 수많은 문제들은 원활한 소통이 전제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난제들이니만큼 새 교황의 대처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교회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교회 쇄신 문제는 새 교황이 되짚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지역교회를 비롯해 본당 사목구는 물론이고 일선 사목 현장 등에서 비등하고 있는 쇄신의 목소리는 대체로 관료주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의 현재에서 비롯된 바가 적지 않다. 관료주의로 인한 병폐가 교회를 심각하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관료주의로 인해 오염된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교황청 내부의 개혁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 근래 들어 교황청을 둘러싼 잡음으로 갖은 억측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교황청 내부 개혁은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 시대의 징표에 적극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며 교회 쇄신의 시금석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새 교회 곳곳에 깊이 침투해 그리스도인들 간의 참다운 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친교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개인주의와 세속주의 등에 젖게 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다양한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위기로 드러나는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 있는 ‘예수님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만나는 체험’의 부재는 새 교황이 반드시 타개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새 교황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온갖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다양한 신자들을 하나의 가톨릭 신앙에 통합시켜 나가야 하는 십자가가 새 교황에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교황직을 이은 첫해 새 교황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핵심 열쇳말은 ‘신앙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포로 지난해 10월 11일 개막해 올해 11월 24일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해를 통해 새 교황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전반을 새롭게 돌아봐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지고 가야 할 교회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고 그 길의 맨 앞에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다.
교황은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수없이 부침과 영욕을 거듭해온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려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도록 지상의 여정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상으로 인해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세상, 인간과 인간 간의 화해를 중재하는 ‘화해의 사도’로 불려왔다. 하느님, 이웃, 창조계 전체와 화해를 이뤄나가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할 때,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한에서만 화해의 교회라고 할 때, 교황이 진 십자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온갖 불목과 불신, 불신앙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상처를 입은 교회가 참 화해에 이르기까지 새 교황이 걸어갈 길이 멀게만 보이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참다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끊임없는 회개를 밑거름으로 한 화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 천년기 들어 두 번째 지상의 대리자로 뽑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앞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십자가가 가로놓여 있는 모습이다. 새 교황이 걸어가야 할 화해의 길을 되새겨본다.
■ 세상과의 화해
지난 4일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첫 전체회의를 열었을 때 묵상거리로 받아든 주제는 ‘이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문제점들과 새 교황 선출에 요구되는 신중한 분별력’이었다. 달리 말해 새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화해의 현장을 찾아 새롭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새로운 교황의 눈에 무엇보다 선명하게 부각되는 화해의 현장은 세상과의 불화, 단절로 인해 끊임없이 파생되는 문제들이 있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기 파괴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세속주의,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생명과 인권 등 인간존엄성 문제, 가정과 혼인 등 전통적 가치관의 혼란 문제 등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가톨릭교회를 둘러싼 이러한 암울한 현실들은 새 교황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절대적 복음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대주의가 갈수록 교회 안팎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그리스도적 가치가 다른 세속적 가치들 속에서 희석되고 있는 현실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입장에서 이런 시대적 조류는 거대한 역풍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근대 들어 역대 교황들은 서구사회가 겪는 신앙 위기의 원인이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고, ‘새로운 봄’을 재촉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임기 중 ‘새로운 복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도 이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시대 조류와 교회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고대했던 것을 모두 제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과학적 지성 체계는 신앙 문제를 태곳적 일이나 신화적인 것, 또는 지나가 버린 문명에나 속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적어도 그리스도교는 과거 유물로 취급된다.”(대담집 「신앙의 빛」 208쪽)
따라서 세속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앞두고 새 교황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역점을 둔 새로운 복음화 과제에 새롭게 다가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대륙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세상의 흐름들은 새 교황이 맞닥뜨린 현실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유럽의 세속화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 아메리카 대륙의 성적 방종, 남미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웃종교와의 경쟁 등 각 지역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이함은 어느 한 지역, 한 계층의 교황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교황의 존재가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한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종교간 대화도 새 교황이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교황에 오른 후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에서 이를 교황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간 화해와 평화가 인류 평화의 가늠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황의 몫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교회 안에서의 화해
일치의 강화
새 교황에게는 각 대륙 다양한 신자들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다져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주어져 있다.
현대 들어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들이 범람하면서 지역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교회와 지역교회들 사이, 교황청과 지역교회들 간에도 적잖은 파열음이 노정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교황 선출 준비회의에서도 여러 추기경들이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역교회의 자율성과 주교단 단체성이 더 존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이 같은 현실은 교황청과 지역교회 간 유기적인 소통의 부재, 교황을 필두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의 불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 여성사제 서품 문제를 비롯해 사제 독신제, 피임 등 현실에서 첨예하게 부닥치는 수많은 문제들은 원활한 소통이 전제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난제들이니만큼 새 교황의 대처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교회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교회 쇄신 문제는 새 교황이 되짚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지역교회를 비롯해 본당 사목구는 물론이고 일선 사목 현장 등에서 비등하고 있는 쇄신의 목소리는 대체로 관료주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의 현재에서 비롯된 바가 적지 않다. 관료주의로 인한 병폐가 교회를 심각하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관료주의로 인해 오염된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교황청 내부의 개혁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 근래 들어 교황청을 둘러싼 잡음으로 갖은 억측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교황청 내부 개혁은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 시대의 징표에 적극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며 교회 쇄신의 시금석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새 교회 곳곳에 깊이 침투해 그리스도인들 간의 참다운 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친교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개인주의와 세속주의 등에 젖게 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다양한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위기로 드러나는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 있는 ‘예수님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만나는 체험’의 부재는 새 교황이 반드시 타개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새 교황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온갖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다양한 신자들을 하나의 가톨릭 신앙에 통합시켜 나가야 하는 십자가가 새 교황에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교황직을 이은 첫해 새 교황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핵심 열쇳말은 ‘신앙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포로 지난해 10월 11일 개막해 올해 11월 24일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해를 통해 새 교황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전반을 새롭게 돌아봐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지고 가야 할 교회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고 그 길의 맨 앞에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새 교황을 말한다
발행일 : 2013-03-24 [제2838호, 13면]
▲ 새 교황이 된 베르골료 추기경이 지난 2008년 성 목요일 미사 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쉼터에서 수용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 일본 나가사키 26성인기념관 관장 렌조 데 루카 신부(예수회)
스스로 답 찾도록 이끄는 지도자
“그분은 훌륭한 지도자십니다.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지요.”
일본 나가사키 26성인기념관 관장 렌조 데 루카 신부(Renzo De Luca·sj)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훌륭한 지도자로 회고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루카 신부가 1981년부터 5년 동안 수련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산미겔 철학신학대학 학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신학생도 아니었고 이제 갓 입회해 신학교 인근에서 생활하는 수련자와 대학 학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루카 신부의 눈에는 아직도 그의 모습이 선하다.
그는 자신의 학생과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었다. 12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과 일일이 상담하고 학생들의 행사나 공부모임에도 참석했다.
대학 학장이었지만 주일이나 축일 등에는 인근의 가난한 공동체를 찾아가 미사를 주례했다. 또 가난한 지역 교회에 신학생들을 보내서 어린이 주일학교를 돕게 하기도 하고 새 교회를 짓기 위해 모금하기도 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데는 늘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학교 접수처에는 당시 학장이었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 안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취미요? 수련기간에 그분을 줄곧 뵀지만 그분 취미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인근에서 수련생활을 했던 루카 신부 역시 그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는 루카 신부의 담당교사가 아니었음에도 루카 신부가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일본에 파견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것도 바로 그였다.
루카 신부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조언하거나 책을 권했다.
특히 강의나 강론에서는 그의 탁월함이 드러났다.
“그분의 강론은 듣는 사람들이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깊이 있는 강론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문맥에 따라 느낄 수 있도록 단어 선택을 하셨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탁월한 설교도 훌륭했지만 그를 가장 빛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이었다. 루카 신부는 성당에서 기도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기도하곤 했다. 그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으면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성당에 들어와 기도했다.
루카 신부는 “수도자로서 질서있고 청빈한 생활, 기도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온 교회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굉장히 어려운 길을 걷는 그분을 위해, 그분께 받은 은혜를 기도로 보답하려합니다.”
1981년 예수회에 입회, 1985년 일본으로 파견된 루카 신부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26성인기념관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 마리아 노에미 바스케스 수녀(위로의 성모 수녀회)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문 분 … 검소한 생활로 정평”
홀로 대중교통을 타며 이동하는 검소한 추기경, 모든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추기경, 늘 기도하며 성모님을 사랑하는 추기경.
한국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아르헨티나 수녀, 마리아 노에미 바스케스(위로의 성모 수녀회) 수녀가 기억하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의 모습,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이다.
“개인 차량도 이용하지 않으시고 옷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사지 않고 좋은 음식도 찾지 않는 검소한 분이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음식을 마다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자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함께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의 높낮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든 어느 곳을 가든 태도가 바뀌는 일 없이 한결같이 행동했다. 화려하거나 강력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건 잘 들어줬다.
하지만 해야할 말은 했다. 특히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야기했다. 1990년대 말에는 전국에 중계되는 대축일미사 강론을 통해 농촌을 위한 정책을 등한시한 대통령을 나무라기도 했다.
바스케스 수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면서 “누구도 대통령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강복 전에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던 모습은 그분이 주례하는 미사에 함께한 이라면 누구나 아는 모습이에요. 늘 기도생활 안에서 사시는 분이셨어요.”
그는 자신의 생일이 “성탄 전 9일 기도 시작일이라 외우기 쉽다”며 사람들에게 농을 던질 정도로 그와 기도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홀로 매일미사를 봉헌했다. 특히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강한 그는 루한(Lujan)의 ‘우리들의 성모 대성당’을 자주 찾아 기도했다. 그는 강론을 통해 “성모님은 나의 어머니”라며 “어려운 순간마다 성모님께서 함께 계셨다”고 말하곤 했다.
“남미에 큰 은총이에요. 교황님이 나신 것 자체로도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미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 기울일 거예요. 교회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 최 베노아 수녀(성가소비녀회)
그분 삶 그대로 담고있는 교황명 ‘프란치스코’
“정말 하느님께서 마음으로 기뻐하실 분께서 교황님이 되신 것 같아요. 교황명이 프란치스코로 정해졌다고 들었을 때, 그분의 삶 자체를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최 베노아 수녀(성가소비녀회)가 교황 프란치스코를 떠올리며 말했다. 최 수녀는 그가 평소에도 성 프란치스코, 성 요셉, 성녀 소화데레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1993년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교구 플로레스지역 주교였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국의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을 병원사도직활동에 초청했다. 그는 한국 출신 문한림 신부가 사목하던 알바레스병원에서 봉사하던 수녀회가 철수하자 문 신부의 고국인 한국에서 초청할 것을 권유했다. 최 베노아 수녀는 이때 파견돼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사도직 활동을 수행했다.
“한국 수녀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셨어요. 만날 때마다 ‘잘 생활하고 있느냐, 기쁘게 생활해야 한다’며 격려하셨지요.”
그는 한국 수녀들을 초청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녀들이 타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손수 기반을 닦았다. 공립병원인 알바레스병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자격이 있어야 했지만 외국인인 한국 수녀들에게는 그 자격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주교였던 그가 직접 주지사를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고 생활면에서도 많은 부분 신경을 써줬다.
또 수도회 설립 50주년을 맞던 1993년 12월에는 직접 주교관을 빌려주며 축하 케이크까지 준비해 줘 아르헨티나에서도 설립 50주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길을 가다 멀리서 한국 수녀들이 오는 것을 보면 일부러 기다렸다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 수녀들은 말은 서툴러도 웃음으로 아주 훌륭한 선교를 하고 있다”며 “웃음은 복음적인 언어”라고 말하며 수녀들을 치하하기도 했다.
최 수녀는 “‘단 2~3시간을 일하더라도 환자들에게 밝게 웃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간단한 말씀으로 수도자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다”고 전했다.
“당신이 먼저 다가가시고 열려있으세요. 유머도 많으셔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긴장하지 않도록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 주셨어요.”
주교관 대기실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었다. 성가소비녀회 관구장 수녀와 함께 그를 방문했을 때도 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미리 약속이 돼 있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려운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가 길어졌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정말로 소박하고 겸손하신 분이에요. 그분을 보면서 진정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스스로 답 찾도록 이끄는 지도자
▲ 렌조 데 루카 신부
일본 나가사키 26성인기념관 관장 렌조 데 루카 신부(Renzo De Luca·sj)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훌륭한 지도자로 회고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루카 신부가 1981년부터 5년 동안 수련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산미겔 철학신학대학 학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신학생도 아니었고 이제 갓 입회해 신학교 인근에서 생활하는 수련자와 대학 학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루카 신부의 눈에는 아직도 그의 모습이 선하다.
그는 자신의 학생과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었다. 12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과 일일이 상담하고 학생들의 행사나 공부모임에도 참석했다.
대학 학장이었지만 주일이나 축일 등에는 인근의 가난한 공동체를 찾아가 미사를 주례했다. 또 가난한 지역 교회에 신학생들을 보내서 어린이 주일학교를 돕게 하기도 하고 새 교회를 짓기 위해 모금하기도 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데는 늘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학교 접수처에는 당시 학장이었던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 안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취미요? 수련기간에 그분을 줄곧 뵀지만 그분 취미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인근에서 수련생활을 했던 루카 신부 역시 그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는 루카 신부의 담당교사가 아니었음에도 루카 신부가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일본에 파견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것도 바로 그였다.
루카 신부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조언하거나 책을 권했다.
특히 강의나 강론에서는 그의 탁월함이 드러났다.
“그분의 강론은 듣는 사람들이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깊이 있는 강론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문맥에 따라 느낄 수 있도록 단어 선택을 하셨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탁월한 설교도 훌륭했지만 그를 가장 빛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이었다. 루카 신부는 성당에서 기도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기도하곤 했다. 그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으면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성당에 들어와 기도했다.
루카 신부는 “수도자로서 질서있고 청빈한 생활, 기도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온 교회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굉장히 어려운 길을 걷는 그분을 위해, 그분께 받은 은혜를 기도로 보답하려합니다.”
1981년 예수회에 입회, 1985년 일본으로 파견된 루카 신부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26성인기념관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 마리아 노에미 바스케스 수녀(위로의 성모 수녀회)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문 분 … 검소한 생활로 정평”
▲ 마리아 노에미 바스케스 수녀
한국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아르헨티나 수녀, 마리아 노에미 바스케스(위로의 성모 수녀회) 수녀가 기억하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의 모습,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이다.
“개인 차량도 이용하지 않으시고 옷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사지 않고 좋은 음식도 찾지 않는 검소한 분이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음식을 마다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자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함께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의 높낮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든 어느 곳을 가든 태도가 바뀌는 일 없이 한결같이 행동했다. 화려하거나 강력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건 잘 들어줬다.
하지만 해야할 말은 했다. 특히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야기했다. 1990년대 말에는 전국에 중계되는 대축일미사 강론을 통해 농촌을 위한 정책을 등한시한 대통령을 나무라기도 했다.
바스케스 수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면서 “누구도 대통령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강복 전에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던 모습은 그분이 주례하는 미사에 함께한 이라면 누구나 아는 모습이에요. 늘 기도생활 안에서 사시는 분이셨어요.”
그는 자신의 생일이 “성탄 전 9일 기도 시작일이라 외우기 쉽다”며 사람들에게 농을 던질 정도로 그와 기도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홀로 매일미사를 봉헌했다. 특히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강한 그는 루한(Lujan)의 ‘우리들의 성모 대성당’을 자주 찾아 기도했다. 그는 강론을 통해 “성모님은 나의 어머니”라며 “어려운 순간마다 성모님께서 함께 계셨다”고 말하곤 했다.
“남미에 큰 은총이에요. 교황님이 나신 것 자체로도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미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 기울일 거예요. 교회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 최 베노아 수녀(성가소비녀회)
그분 삶 그대로 담고있는 교황명 ‘프란치스코’
“정말 하느님께서 마음으로 기뻐하실 분께서 교황님이 되신 것 같아요. 교황명이 프란치스코로 정해졌다고 들었을 때, 그분의 삶 자체를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최 베노아 수녀(성가소비녀회)가 교황 프란치스코를 떠올리며 말했다. 최 수녀는 그가 평소에도 성 프란치스코, 성 요셉, 성녀 소화데레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1993년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교구 플로레스지역 주교였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국의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을 병원사도직활동에 초청했다. 그는 한국 출신 문한림 신부가 사목하던 알바레스병원에서 봉사하던 수녀회가 철수하자 문 신부의 고국인 한국에서 초청할 것을 권유했다. 최 베노아 수녀는 이때 파견돼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사도직 활동을 수행했다.
“한국 수녀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셨어요. 만날 때마다 ‘잘 생활하고 있느냐, 기쁘게 생활해야 한다’며 격려하셨지요.”
그는 한국 수녀들을 초청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녀들이 타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손수 기반을 닦았다. 공립병원인 알바레스병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자격이 있어야 했지만 외국인인 한국 수녀들에게는 그 자격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주교였던 그가 직접 주지사를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고 생활면에서도 많은 부분 신경을 써줬다.
또 수도회 설립 50주년을 맞던 1993년 12월에는 직접 주교관을 빌려주며 축하 케이크까지 준비해 줘 아르헨티나에서도 설립 50주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길을 가다 멀리서 한국 수녀들이 오는 것을 보면 일부러 기다렸다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 수녀들은 말은 서툴러도 웃음으로 아주 훌륭한 선교를 하고 있다”며 “웃음은 복음적인 언어”라고 말하며 수녀들을 치하하기도 했다.
최 수녀는 “‘단 2~3시간을 일하더라도 환자들에게 밝게 웃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간단한 말씀으로 수도자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다”고 전했다.
“당신이 먼저 다가가시고 열려있으세요. 유머도 많으셔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긴장하지 않도록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 주셨어요.”
주교관 대기실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었다. 성가소비녀회 관구장 수녀와 함께 그를 방문했을 때도 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미리 약속이 돼 있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려운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가 길어졌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정말로 소박하고 겸손하신 분이에요. 그분을 보면서 진정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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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묵내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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