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런던대 레이먼드 돌란(Raymond Dolan) 교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돌란 교수는 사회뇌과학의 대가로 400편이 넘는 논문과 재치 있는 명강연으로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멋진 학자였다.
그는 강연에서 인간의 동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는데, 그중 한 결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객관적 확률보다 자신의 상황을 더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이 있다.
’긍정 편향(optimism bias)’이라 불리는 이런 인지 성향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왔는데, 덕분에 사람들은 확률적으론 도저히 가망 없는 복권이나 도박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특히 여기에 또 다른 인지 편향인 ’우수성 편향(superiority bias)’이 추가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행운을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게 된다.
예를 들어 90% 이상의 운전자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한다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대학 교수의 70%가량은 자신들이 상위 25% 수준의 최고 강의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구들을 기반으로 돌란 교수는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심리적 검사를 통해 정상인들이 기대했던 수준의 낙관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 후, 우울증 환자들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한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당연히 인생을 더 비관적으로 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나이가 먹을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긍정적 편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고 무기력한 우울증 환자들은 객관적 확률을 가장 잘 예상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사막에서 멍하니 앉아 ‘누군가 오겠지’ 기다리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에 해당한다.
긍정 편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생은 사실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한 정치인이나 최고경영자도 어차피 나중에 죽으면 끝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뇌는 딜레마에 빠진다.
뼈 빠지게 고생한들 나중에 다 죽고 성공할 확률도 거의 없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물론 위험한 생각이다.
그 누구도 생각을 행동으로 실행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살아남지도, 발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생각들을 막기 위해 객관적 확률보다 더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뇌가 진화했다는 게 돌란 교수의 가설이다.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s Can Do)!’
사실 말도 안 되는 이런 긍정적 마인드 덕분에 우리는 지구 최악의 빈민국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수천 문의 북한 장사포로 30분 만에 서울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근거 없는 자신감과 우수성 편향으로 더 이상 부인하며 살 수는 없을 듯하다.
대한민국 정부나 군대, 국민, 기업, 학교 모두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현실적인 ’우울증 환자식’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대식 / KAIST 교수 ·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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