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만물상] 휴대폰 벨 소리 벌금

뚜르(Tours) 2013. 4. 21. 00:35

아는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다. 같은 대학에 수업 중 학생들이 휴대전화 하는 걸 엄격히 금지한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경우엔 가차없이 학생에게 벌금을 물렸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중 교수 자신의 전화벨이 울렸다. 교수는 학생들 보기 민망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기지(機智)를 발휘했다. "하나님, 수업하고 있으니 전화하지 마세요."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한데 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 교수는 다시 전화에 대고 화를 낸 척했다. "하나님, 수업 중에는 전화하지 마시라니깐요."

▶그 교수는 하나님 신세를 지며 무안한 순간을 넘겼지만 대개 휴대전화 공해(公害)는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어느 칼럼니스트는 "상상해보라. 전국 가가호호 전화가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할 것인가"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국내 이동 전화 가입자는 인구보다 많은 5300만명이다.

일러스트
▶거리나 지하철·버스, 식당은 물론 도서관, 극장, 미술관, 장례식장, 강연장, 예배 공간 등 곳곳에 휴대전화 소리가 흘러넘친다. 보기 싫은 것은 눈 감으면 되지만 듣기 싫은 것은 귀를 닫을 수도 없다. 재작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때는 무대에서 가까운 1층 객석에서 전화벨 소리가 1분 가까이나 울렸다.

▶공교롭게도 아주 엄숙하고 느린 연주를 하는 대목이었다. 벨 소리는 연주자나 청중 모두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겨우 멈췄다. 지휘자는 "벨 소리 때문에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며 공식 항의했다. 이런 경우 미국에선 벌금을 물린다. 뉴욕시는 공연장·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전원을 끄지 않아 벨 소리가 울리면 최고 50달러까지 벌금을 매긴다.

▶엊그제 미국 미시간주 지방 법원 법정에서 재판 중 판사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판사가 스스로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신성한 법정에서 휴대전화를 끄지 않아 재판에 지장을 주었다는 게 판사가 자신을 처벌한 이유다. 이 판사는 누구든 법정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를 울린 사람에겐 예외 없이 벌금을 물려 왔다. 1999년 새로운 1000년의 시작을 앞두고 국내 어느 조사에서 '지난 1000년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가장 많은 사람이 '전화'라고 답했다. 휴대전화를 최고의 발명품답게 사용하려면 서로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것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태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