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성한 신비들 중에서 성체성사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고해성사야 말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그의
영적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겸손과 신심을 가지고 고해성사에 임하라. 너희 양심 속에
대죄의 가책이 있을 때마다 그리하여라.”
이점에 관해서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성체에 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죄를 범했을 때에는 비록 통회를 이미 하였고, 성체를
모시려는 열정이 있더라도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먼저 보는 것이
필요 불가결 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극히 중대한 독성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비르지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죄를 충분히 벌 할만한 벌이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이 독성죄르 범하는 사람들이 “성당에 올 때에는
몇 가지 죄를 지니고 들어오지만 나갈 때는 더 많은 죄를 지니고 나간다.”
라고 하였다. 성 치릴로는 더 단호하게 증언하고 있다.
“독성죄인 모령성체를 하는 사람은 사탄과 예수님을 동시에 마음속에
받아들인다. 사탄은 들어가서 지배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에세
희생제물로 바쳐지신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모든 신성한 신비들 중에서 성체성사와 비교될 수 잇는 것은 없다.
따라서 신자들이 거룩함의 원천이시며 근원이신 분을, 거룩하지 않고
불경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만큼, 하느님께로부터 받게 될 가공할
벌보다 더 심한 벌은 없다.”
그러나 성화(聖化)은총 상태에 있는 영혼을 더 깨끗하게
더 아름답게하기 위해서 영성체 전에 본 고해성사는 값진 것이다.
예수님을 모시기 전에 영혼의 순결함을 원한다면
고해성사를 잘 봄으로서 얻게되는 순결함보다 더 찬란한 순결함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성혈이 통회하는 영혼을 씻어서 신성하게
빛나게 하고 사랑스럽게 해 주기 때문이다.
- 성체성사에서 만나는 예수님 사랑 p90-91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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