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사라진 것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인한 '고의적 삭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광수)는 이 사건 수사결과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은 국정원에서 1급 비밀로 보관하도록 하라"며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른바 '초본' 회의록을 삭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불구속기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나머지 참여정부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상부의 지시 또는 관련부서 요청에 따라 실무적 차원에서 삭제 행위에 가담한 점" 등을 감안해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초본 삭제에 대해서는 관련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유출본의 국가기록원 미이관 혐의에 대해서는 위법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기록물 미이관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이 없다.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NLL 포기' 발언으로 해석될 만한 부분은 공개된 내용 중에는 없었다. 검찰이 초본과 유출본이 내용상으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밝힌 것을 보면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서도 그런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조명균 전 비서관은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9일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을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하고 백종천 전 외교안보실장의 중간 결재를 거쳐 노 전 대통령이 최종 결재를 받았다.
회의록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회의록 수정·변경을 거쳐 1급비밀 문서로 생산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의록은 국정원에서 1급비밀로 보관하도록 하라"며 "이지원 시스템에 있는 회의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회의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에 따라 백종천 전 실장과 조명균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 국정원에 회의록 사본과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한편 결재를 마친 회의록 파일을 삭제했다.
이지원은 구조적으로 데이터 삭제가 불가능하지만 이들은 이지원 관리부서인 업무혁신비서관실의 '삭제 매뉴얼'에 따라 비정상적 방법으로 회의록을 파기한 것으로 파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말 대통령기록물 이관작업과 함께 저서집필 등을 이유로 사저인 경남 봉하마을로 가져갈 이른바 '봉하이지원' 제작작업을 시작했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2008년 2월 이지원시스템 접속이 차단된 상태에서 업무혁신비서관실 협조를 받아 회의록 파일을 봉하이지원에 복제했다.
파일을 봉하이지원에 복제한 후에는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을 초기화해 내부기록을 모두 지웠다.
검찰은 당시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업무혁신비서관실에 전달한 '메모보고'를 주요 근거로 확인했다.
메모보고에는 "안보실장과 상의해 이지원의 문서 관리카드에서는 삭제하고 대통령님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 메모보고로 올린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다만 조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이 메모보고를 이지원에 올렸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 메모보고를 열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 전 비서관은 네 차례에 걸친 검찰 소환조사에서 "회의록 삭제 및 파기 행위는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같은 진술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결과 회의록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삭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회의록 제작·이관 과정의 총책임자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에 대해서는 "삭제 또는 유출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다만 문 의원이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회의록 파일을 전송받아 열람했고 참여정부 말에는 '등록돼서는 안되는 문서 처리'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진술이 나온 점 등을 이유로 "소환조사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회의록 미이관이 실무자의 단순 실수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고의 삭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삭제하고 국정원에만 보관하라고 한 동기에 대해서는 '보상상 이유가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것 외에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삭제된 회의록이 '초본'에 해당돼 삭제가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삭제된 회의록과 유출된 회의록이 모두 완성된 형태의 회의록이고 어느 한쪽이 사료로서 더 가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여정부 당시 다른 외국과 정상회담 회의록은 모두 수정 전·후 문건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점도 고려됐다.
국정원 회의록이 있는 만큼 회의록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관의 문서 보존과 국정원의 문서 관리는 그 취지, 절차 등에 있어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해 "어떤 정치적 입장과도 상관없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했고 객관적 증거에 근거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참여정부 인사들과 민주당은 "짜맞추기 표적수사로 일관한 정치검찰의 예고된 결론"이라며 반발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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