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숨은 일꾼’을 우대하라

뚜르(Tours) 2014. 7. 3. 06:51

’조직 내 투명인간이 누구인지 찾아내라. 이들을 인정하고 대우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중요한 책임이다.’
세계 곳곳에서 ’투명인간’들을 인터뷰했다는 데이비드 츠바이크(Zweig)는 미국 경영 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신호에 실린 ’투명인간을 주목하라(Managing the invisibles)’란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투명인간이란 통역사, 피아노 조율사, 마취과 의사, 책·신문의 편집자 같은 사람들이다. 무대 뒤에서 일하면서 결코 조명받는 일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면 환자의 목숨을 손에 쥔 사람은 외과 집도의(執刀醫)보다 마취과 의사일 때가 많다. 편집자 없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신문 지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각 회사나 조직에도 투명인간이 있고 이들에겐 특징이 있다. 드러나는 성과나 명성보다 일 자체에 몰두하길 선호하고, 일은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처리하며, 맡은 일에 기꺼이 책임을 진다. 당장 수익을 내는 성과는 못 낼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조직의 소금과 같다. 조직의 본업이 지속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밑에서 받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장 무거운 책임의 무게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무게의 상당 부분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투명인간들이 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투명인간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다 보니 조직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설 자리가 좁아질 위험도 높다. 요즘처럼 자기 홍보가 대세인 시대, 특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앞다퉈 PR성 성과물을 내세우는 때에는 투명인간들이 묻혀 버리기 십상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안전 불감증, 재난 구조 시스템 부재, 책임 회피에 대한 비난과 한탄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승객을 저버린 선장과 선원, 부실 항해를 거듭한 해운사, 관리·감독이나 구조에 무능한 공무원…. 하지만 이들 개개인의 자질 부족이나 직업윤리 결여가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안전 점검이나 구조 시스템 운영이야말로 대표적인 투명인간의 업(業)일 텐데, 우리 사회는 투명인간들을 어떻게 대우해 왔을까. 수익도 못 내면서 비용만 잡아먹거나 티도 안 나는 일에 고지식하게 매달리는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하진 않았나. 회사나 조직의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여겨진 지 이미 오래인지라 거의 사라져 버린 건 아닌가.

투명인간이 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막는 길일 듯싶다. 그래서 절실한 것이 투명인간을 알아볼 줄 아는 최고 책임자나 최고 경영자들의 ’밝은 눈’이다.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평가받고 인정받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조선일보 <기자의 시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