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동물본색 /윤준경

뚜르(Tours) 2018. 8. 31. 08:16



동물본색

 

 

게탕을 끓여본다고 살아있는 게를 샀어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툭툭 나를 발길질하며

버스럭거리는 게

무를 썰고 물을 끓이며 너를 잡을 시간

쏟아놓은 게는 서로 엉긴 채 발버둥을 치면서

나를 향해 거품을 물었어

날 선 가위를 들이대며

너의 날개를 자르는 동안

내게는 쓸모없는 이 날개가

너에게야 얼마나 아픈 살점인가

막무가내 퍼덕거리는 놈의 한쪽 발을 집게로 잡고

마침내 하나의 날개를 잘랐어

파드득파드득 게는 제 다리를 잘라가며 몸부림을 쳤지

그 아픔이 나에게로 와서 나도 온몸을 떨었어

또 하나의 날개를 잘랐어

게는 또 죽을 듯 아니, 죽일 듯

혼신의 힘으로 나에게 덤벼들었지

앞발을 벌려 마침내 내 손가락을 물어

아얏! 소리가 온 집안을 공포로 몰아가고

나는 정말 여기서

이 짓을 멈추고 싶었어

 

또 하나의 날개와 또 다른 날개

큰 집게발과 또 다른 집게발들까지

죽음 앞에 게만큼 나도 숨을 몰아쉬며 아파했지

 

그리고

마침내 후룩후룩

게탕을 먹었다는 거.....

 

 

- 윤준경 시집 <시와 연애의 무용론> 2017

 

[출처] 동물본색 / 윤준경|작성자 시를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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