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본색
게탕을 끓여본다고 살아있는 게를 샀어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툭툭 나를 발길질하며
버스럭거리는 게
무를 썰고 물을 끓이며 너를 잡을 시간
쏟아놓은 게는 서로 엉긴 채 발버둥을 치면서
나를 향해 거품을 물었어
날 선 가위를 들이대며
너의 날개를 자르는 동안
내게는 쓸모없는 이 날개가
너에게야 얼마나 아픈 살점인가
막무가내 퍼덕거리는 놈의 한쪽 발을 집게로 잡고
마침내 하나의 날개를 잘랐어
파드득파드득 게는 제 다리를 잘라가며 몸부림을 쳤지
그 아픔이 나에게로 와서 나도 온몸을 떨었어
또 하나의 날개를 잘랐어
게는 또 죽을 듯 아니, 죽일 듯
혼신의 힘으로 나에게 덤벼들었지
앞발을 벌려 마침내 내 손가락을 물어
아얏! 소리가 온 집안을 공포로 몰아가고
나는 정말 여기서
이 짓을 멈추고 싶었어
또 하나의 날개와 또 다른 날개
큰 집게발과 또 다른 집게발들까지
죽음 앞에 게만큼 나도 숨을 몰아쉬며 아파했지
그리고
마침내 후룩후룩
게탕을 먹었다는 거.....
- 윤준경 시집 <시와 연애의 무용론> 2017
[출처] 동물본색 / 윤준경|작성자 시를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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